27살 청년은 어떻게 채무자가 됐나
사무보조 일을 하며 받는 세후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부모를 봉양하던 그는 5년 동안 매달 34만원(총 204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회생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개인회생 ‘졸업’을 불과 1년 앞둔 2018년 1월 희귀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송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버텨왔던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송씨는 4년째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송연주씨가 보내온 신발 사진. 그는 "비가 오면 물이 새지만 그나마 제일 따뜻한 신발"이라며 한 켤레로 몇년째 겨울을 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송연주
기초수급자 목 조인 대법원

송씨의 기초 수급자 증명 서류. 사진 송연주
송씨가 회생 법원으로부터 채무 삭감을 받고 대법원이 이를 뒤엎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6개월. 만약 회생 법원이 당초 결정을 취소한다면 그는 12개월간 408만원을 추가 변제해야 한다. 연체 기록이 쌓이면 4년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송씨의 변제 내역. 암 선고를 받기 전인 2018년 1월까지 총 48개월 간 1600여 만원을 갚았다. 사진 송연주
특별면책의 문턱

송씨가 보내온 식사 사진. 주로 두부와 김치를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사진 송연주
하지만 실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채무자는 드물다는 것이 서울회생법원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서 특별면책을 받은 채무자는 35명에 불과했다. 일반면책(만기까지 완납)을 받은 회생자가 1만4000여 명임을 고려하면 전체의 약 0.24%만이 특별면책 대상자가 되는 셈이다.

송씨가 복용 중인 정신과 치료약. 그는 2017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송연주
특별면책 허가가 주먹구구식으로 내려진다는 점도 문제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특별면책 기준에 관한 예규가 없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통일된, 예측 가능한 기준이 없다”고 꼬집었다. 법원마다 변제 불능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제각각이란 뜻이다.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린다면?
백주선 변호사는 “개인회생 사건의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준 원채권자가 아닌 양수채권자인 경우가 많다”며 “헐값으로 부실 채권을 사온 대부업체를 보호할 필요성이 채무자들의 사회 복귀 필요성보다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셋 중 하나 탈락하는 ‘마의 3년’
특히 3년차는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 개인회생 중도 탈락자의 60.3%가 변제 2~3년차에 탈락하기 때문이다. 잦은 중도 탈락으로 채무자의 사회 복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법도 바뀌었다. 2017년 채무자회생법개정안은 최대 60개월이었던 변제 기간을 36개월로 단축했다. 변제 기간 상한을 최대 36개월로 하는 일본 민사재생법과 미국 파산법 등 선진국의 제도를 참고했다.
대법원이 엎은 법, 국회서 살아날까
신청 시기에 따라 변제 기간이 달라지고 채무자간 형평성 문제가 생기자 서울회생법원이 팔을 걷고 나섰다. 법 개정 이전 사건에 대해서도 변제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업무지침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개정 이전 규정에 대한 채권자 신뢰가 공익상의 요구보다 더 보호 가치가 있다”며 소급 적용을 불허했다.
칼자루는 다시 입법부에 돌아갔다. 박주민의원이 개정법 시행 전 회생 신청자의 변제기간도 최대 3년으로 제한하는 채무자회생법 부칙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채무자 3만명의 사회 복귀가 2년 앞당겨진다.
채무자회생법 부칙 개정안의 운명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