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쓰고 해상서 불태운 北…"코로나 극도 경계 표출한 듯"

어업지도원 이모씨(47)를 향해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과 관련해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24일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북한의 실종 공무원 총격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북한의 실종 공무원 총격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이처럼 잔인한 행위를 벌인 이유는 뭘까. 정부 안팎에선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대한 공포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월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확산하자 국경을 봉쇄했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국가 비상방역체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1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에 특수작전부대를 배치하고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 대해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의료 방역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북한 입장에선 코로나 19가 유입될 경우 속수무책인 만큼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종 공무원이 피살된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인근에 보이는 북한 경비정의 모습. [뉴시스]

실종 공무원이 피살된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인근에 보이는 북한 경비정의 모습. [뉴시스]

군 당국은 북한군이 22일 오후 이씨를 발견한 뒤 방독면을 착용하고 접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군은 이후에도 기진맥진한 이씨를 육지로 옮기지 않고 물속에 그대로 방치했다. 이 역시 코로나 19에 대한 극도의 경계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신을 해상에서 태운 비상식적인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군 내 팽배한 문책에 대한 두려움도 원인이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19일 재입북한 탈북자 김 모씨가 개성에 도착해 발각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상 확대회의를 소집해 개성 지역을 통제했다. 이어 김씨가 거쳐 간 지역의 부대 관계자를 문책했다. 때문에 이씨를 발견한 부대 차원에서 유사한 징계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이모씨가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 [뉴스1]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이모씨가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 [뉴스1]

그러나 북한군이 이씨를 발견한 지 6시간 뒤 총격을 가했고,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군 당국의 발표를 고려하면 이번 사건은 북한 최고 지도부에 보고된 뒤 ‘지침’을 받아 실행한 것이란 관측도 전문가들 사이에 나온다. 과거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처럼 남북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사안을 해당 부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경우 북한 수뇌부가 의도적으로 벌인 '보여주기식' 만행일 수 있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지난 6월 한국을 ‘적’으로 규정했다”며 “민간인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모습을 통해 ‘더 이상 남북관계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는 경색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아무리 코로나 19로 비상이 걸렸다 해도 이번 사건은 인도적 차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민의 공분을 살 수 있는 사안이며 남북관계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