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한·일 과거 발목잡혀선 안돼"…위안부·강제징용은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한ㆍ일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ㆍ미ㆍ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한ㆍ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1·18)에 이어 이번 기념사에서도 대일 노선과 관련해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를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우리 사이에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고,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며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와 한·일 관계 개선 문제 중 후자에 더욱 방점을 둔 말이다.
 
실제로 8000자에 달하는 이날 기념사에서 한ㆍ일 외교와 직접 관련된 부분은 1400자 정도에 그쳤다. 일본이 극도로 민감하게 대응해왔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법원의 배상 판결 등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빠졌다.
 
이는 한·일 관계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구체화되고 있는 대일(對日) 유화정책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배상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했고, 줄곧 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해왔던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적 합의였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변화는 과거 3·1절 기념사와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취임 후 첫 3ㆍ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반인륜적 인권 범죄 행위’로 규정하며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현 총리)은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2019년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사과를 관계 개선의 전제로 삼는 입장은 “과거를 직시(直視)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이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던 지난해 기념사까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올해도 ‘직시’라는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두 문장의 주어는 모두 ‘일본’이 아닌 ‘우리’로 돼있다. 일본의 일방적 사과가 아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조한 표현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ㆍ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한ㆍ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다”며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ㆍ일 협력 복원의 매개체로 오는 7월 개최 예정인 도쿄(東京) 올림픽을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ㆍ일간, 남북간, 북ㆍ일간 그리고 북ㆍ미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아가 한ㆍ일 양국이 코로나로 타격받은 경제를 회복하고, 더 굳건한 협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일본의 역할을 요청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몽골과 함께 동북아 방역ㆍ보건협력체를 출범시켰다”며 “일본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고, 나아가 북한도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동북아 방역ㆍ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ㆍ교류하길 희망한다”며 “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생과 평화의 물꼬를 트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내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방역협력체를 남북관계 진전의 실마리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의 상당 부분을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에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코로나와의 싸움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다”며 “백신 접종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국민들께서는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경계하고 백신 접종에 적극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