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상황, 기가 질린다" 민원도 묵살됐던 광주 참사 그곳

“아이고 왜 그 차를 탔니 친구야…아픈 신랑은 어쩌고 먼저 가느냐…”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광주 동구청에 마련되어 한 희생자의 여고동창생이 친구의 사진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광주 동구청에 마련되어 한 희생자의 여고동창생이 친구의 사진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동구청 앞 광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애통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생자 고(故) 고재남씨의 영정 사진 앞에는 비보를 듣고 분향소를 찾은 소꿉친구들이 고인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울부짖었다.

친구의 영정 사진 앞에 선 유점순(71)씨는 “담양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7살 때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다”며 “삼남매의 엄마이자 남편을 요양원에 둔 친구의 비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오열했다. 유씨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친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한쪽 손으로 고씨의 영정사진을 계속 어루만졌다. 그는 “70년간의 우리 우정을 간직할게”라며 “그동안 우리 많이 사랑했어. 고마워”라고 말한 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11일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광주 동구청에 마련돼 시민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광주 동구청에 마련돼 시민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눈물바다 된 합동분향소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건물이 붕괴해 9명이 숨진 지 사흘째인 이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합동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530명의 시민이 찾아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담긴 제단 앞에 헌화하거나 분향했다.

시민들은 희생자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어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동구청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일한다는 김모(56)씨는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분향소에 들렀다. “광주시민이라면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라고 말한 그는 분향소에서 영정사진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추모했다. 김씨는 “이런 참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사람 목숨이 경시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1일 광주 동구 서석동 동구청 앞 광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김모(56)씨가 영정사진 앞에 큰절을 올리며 추모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11일 광주 동구 서석동 동구청 앞 광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김모(56)씨가 영정사진 앞에 큰절을 올리며 추모하고 있다. 이가람 기자

사고가 발생한 학동4구역과 인연이 있는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학동4구역 재개발 조합원인 양모(73)씨는 “앞으로 저희가 살 곳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져서 너무 안타깝다”며 아내와 함께 영정사진 앞에 헌화했다. 학동3구역에 거주하는 양모(84)씨는 “사고가 발생한 당일에 이발소에 갔다 오면서 바로 그 앞을 지나갔다”며 “포클레인이 흙 위에서 위험하게 작업하고 인도를 통제하는 사람도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서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민원 경고 무시했다” 분통 터뜨린 시민들

지난달 10일 광주 동구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는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의 현장 관리 감독과 안전 조치를 촉구하는 민원이 접수됐다.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10일 광주 동구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는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의 현장 관리 감독과 안전 조치를 촉구하는 민원이 접수됐다. 홈페이지 캡처

이날 분향소를 찾은 일부 시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원인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미흡한 대처를 거론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내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황모(83)씨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젊은 고등학생이 죽은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가리켜 ‘인재’(人災)라고 강조한 황씨는 “위험한 철거 현장에 대해 4월 초에 주민들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동구청에도 민원을 접수했음에도 묵살됐다”며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현장에서 즉각 반영됐다면 꿈도 펴지 못한 고등학생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광주 동구 주민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의 현장 관리 감독과 안전 조치를 촉구하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부터 광주 동구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는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에 대한 민원이 이어졌다.

과거 동구청 “이행실태 관리하고 있다” 답변

지난달 10일 한 민원인은 “학4지구 재개발 철거공사현장으로 불편함이 많다”며 “2400여 세대가 들어서는 대규모 공사이고 시행사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형업체지만 참 쉽게도 일한다”는 민원 글을 남겼다. 이 글에서 그는 “현장 책임자인 현장대리인은 상주하며 책임관리를 하고 있느냐” “안전관리자는 근로자의 안전과 주변인들의 안전을 생각하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동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공사를 진행하도록 요구하고 이행실태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12월에도 한 민원인은 “학4구역 철거하는 상황을 보면 기가 질릴 것이다”며 구청장을 향해 “안전진단 검사를 공개해서 납득이 가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민원이 많았던 현장에서 참사가 발생한 데다 당시 감리자가 없었으며 철거 업체는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철거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행정기관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지난 10일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변명할 게 없다”며 “관리·감독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광주=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