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영화의 단골 소재로 쓰이던 시절 이미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 국내 업체가 있다. 1988년 설립된 유진로봇(옛 유진로보틱스)이다. 국내 1세대 로봇업체인 유진로봇이 만든 군사용 위험 작업 처리 로봇 ‘롭헤즈’는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 자이툰 부대에서 일했고 유아교육용 로봇인 ‘아이로비’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5년 출시한 로봇 청소기인 ‘아이클레보’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이 적용된 로봇 청소기로 손꼽힌다. 지난 6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유진로봇 사옥에서 만난 박성주(58)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쌓은 로봇 핵심 원천 기술을 서비스 로봇에 이어 물류 로봇에 접목해 새 시장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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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유진로봇 사옥에서 만난 박성주 유진로봇 대표가 물류로봇인 '고카트 250'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최현주 기자
유진로봇은 현재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점유율 3위다. 10년 전 만해도 유진로봇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아이클레보 수출로 벌었다. 현재는 30% 수준이다. 박 대표는 “2005년 아이클레보 출시 당시 미국에서도 로봇 청소기를 만들었지만, 전 세계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로봇 청소기는 유진로봇과 삼성전자, LG전자의 제품뿐이었다”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발군이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국내 로봇 청소기 전력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공세가 시작되면서다. 중국업체의 저가 전략은 한국 제품에 직격탄이 됐다. 박 대표는 “가전 시장 소비 패턴을 보면 유럽은 프리미엄을, 한국은 가성비(가격 대시 성능의 비율)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 청소기 이어 물류 로봇에 초점
유진로봇은 전체 직원 10명 중 6명이 연구원이다. 매년 매출이 1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고 있는데 로봇 관련 국내‧외 특허‧출원이 250여 개다. 유진로봇 보유한 핵심 원천기술은 로봇의 자율주행 기술이다. 로봇이 혼자 움직이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과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센서 기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다개체 로봇간 이동체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달 출시한 자율주행 물류 로봇인 '고카트 250'이 커피를 나르는 모습. [사진 유진로봇]](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8/17/12b7118d-1e1a-4e86-9029-6eafcd3fde48.jpg)
지난달 출시한 자율주행 물류 로봇인 '고카트 250'이 커피를 나르는 모습. [사진 유진로봇]
유진로봇은 이런 기술을 모두 담은 자율주행 로봇화에 필요한 자율주행 토털 솔루션을 개발했다. 박 대표는 “한마디로 바퀴 달린 모든 사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병원 침대가 알아서 검사실로 환자를 옮겨주고 마트 카트가 알아서 구매자를 쫓아다니다 결제가 끝나면 보관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진로봇은 2년 전 개발을 마친 자유 주행 물류로봇인 ‘고카트 250’를 지난달 출시했다. 물류로봇 국제표준인 ‘ISO 13482’를 받기 위해서다. 현재 국내에는 이 인증을 보유한 업체가 없다. 그만큼 조건이 까다롭다. 예컨대 100㎏ 무게의 짐을 나를 수 있는 로봇의 카메라가 고장 나서 멈출 수 있지만,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는 식이다.
박 대표는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조건이 아주 까다롭고 미국이나 유럽은 이 인증이 없으면 사실상 수출이 어렵다”며 “국내에 먼저 출시할 수도 있었지만, 2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확실한 차별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병원 침대가 간호사를 대신해 알아서 환자를 검사실로 옮겨주고 필요한 물품을 갖다 준다면 간호사는 그 시간에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며 보다 양질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