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11〉
![중국 방문 마지막 날, 닉슨은 저우언라이와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2월 28일 오전, 홍차오 공항에서 저우와 작별인사 나누는 닉슨. [사진 김명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15/64c56afb-6b3a-4dd8-a316-f9e50819b339.jpg)
중국 방문 마지막 날, 닉슨은 저우언라이와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2월 28일 오전, 홍차오 공항에서 저우와 작별인사 나누는 닉슨. [사진 김명호]
마오, 퇴임한 닉슨 수차례 방중 요청
![중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포드를 영접하는 덩샤오핑. 왼쪽 첫째가 미국의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 부시. 1975년 12월 1일, 베이징. [사진 김명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15/0e3d28cb-760f-40c6-9d38-8e4fc4e9a1e3.jpg)
중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포드를 영접하는 덩샤오핑. 왼쪽 첫째가 미국의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 부시. 1975년 12월 1일, 베이징. [사진 김명호]
데이비드가 구술한 마오쩌둥의 첫인상을 소개한다. “보는 순간 심란했다. 머리를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헝클어진 두발에 늘어진 입술 사이로 힘들게 공기를 삼키는 모습이었다. 앉은 채 내미는 손을 잡다 보니 높은 각도에서 마오를 관찰할 수 있었다. 넓게 퍼진 얼굴과 귀를 보며 신이 출현한 줄 알았다.” 데이비드의 태도가 마오의 주의를 끌었다. “뭘 뚫어지게 보느냐?” “방금 주석의 얼굴을 봤습니다. 상반부가 특이합니다.” 마오가 답했다. “나는 중국인의 얼굴을 갖고 태어났다. 연기에 적합하기는 중국인의 얼굴이 세계 제일이다. 코가 퍼져있기 때문이다. 분장만 하면 미국이나 소련, 프랑스 무대에 세워놔도 손색이 없다. 서구인은 코가 높다. 무대에서 중국인 역 하려면 코를 조금 잘라내야 한다.” 데이비드가 웃음 터뜨리며 마오의 옆자리에 앉자 쥴리가 편지를 꺼냈다. “아버지가 주석에게 전달하라 했습니다.”
![쥴리와 데이비드를 배웅하는 마오쩌둥. 마오의 오른쪽이 왕하이룽. 1975년 12월 31일 밤 중난하이(中南海). [사진 김명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201/15/9fc54ab0-ff1a-404a-8c19-a5febbfe7104.jpg)
쥴리와 데이비드를 배웅하는 마오쩌둥. 마오의 오른쪽이 왕하이룽. 1975년 12월 31일 밤 중난하이(中南海). [사진 김명호]
데이비드가 말머리를 돌렸다. “미국인들이 주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작물을 수십억 부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마오쩌둥은 기분이 좋았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책들은 읽기에 불편한 내용이 많다. 교육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다.” 데이비드는 닉슨의 말을 상기시켰다. “장인은 주석의 저작물이 한 민족을 이끌고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했습니다.” 마오는 겸손으로 응대했다. “지구는 넓다. 거대한 지구를 개조하고 변화시킬 사람은 없다. 나는 베이징 부근의 몇 개 지역만 변화시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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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중국 음식에 습관이 됐느냐?” 데이비드가 웃으며 대답했다. “익숙하지 못합니다. 키신저도 미국인이 중국 음식 먹으면 위장이 비정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위장 기능도 가끔 비정상일 때가 있다. 베이징에 온 후부터 특히 그랬다. 위장이 가장 정상일 때는 전쟁 시절이었다.” 데이비드가 “중국에 전쟁 일어날 일 없으니 애석하다”고 하자 마오가 큰 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중국인이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에 마오의 목청이 더 높아졌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더냐? 중국인은 싸움을 좋아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전쟁이 없어도 적은 있다. 각양각색의 적들이 도처에 있다. 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평화를 주장할 자격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다. 나는 무능한 사람보다 유능한 배신자가 좋다. 유능한 배신자는 잘못을 고칠 줄 안다. 한동안 놔뒀다가 다시 기용하면 착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더 큰 역할을 충분히 소화한다.” “적은 우파를 의미하느냐”는 데이비드 질문에도 답을 줬다. “그 반대다. 나는 우파를 좋아한다. 네 장인은 우파다. 드골과 영국 수상 히스도 우파다. 우파에겐 얻을 것이 많다. 나는 조금만 줘도 된다.”
1976년 2월 6일, 국영 신화(新華)통신이 세계를 향해 공고(公告)나 다름없는 뉴스를 배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