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기업에 다니는 A(38)씨는 “대학 동기들은 기본이 한 장(1000만원)인 것 같은데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연초 성과급 시즌을 맞아 직장가가 술렁이고 있다. 1년 전 SK하이닉스가 지핀 성과급 논란 이후 맞는 첫 지급철인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한 분위기다.

국내 기업 임금체계 유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달아오르는 성과급 경쟁
![지난해 2월1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의 M16 준공식에 화상 연결 방식으로 참여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 [사진 SK하이닉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1/19/8ae1e8a6-7288-405b-96f9-b6a1a3c176a6.jpg)
지난해 2월1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의 M16 준공식에 화상 연결 방식으로 참여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 [사진 SK하이닉스]
특히 지난해 실적이 좋았던 업계를 중심으로 성과급 경쟁과 신경전이 치열하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지난해 12월24일 삼성전자가 한 달 기본급의 200%를 특별보너스로 지급한다고 발표하자 1주일 뒤 SK하이닉스는 기본급의 300%를 특별성과급으로 주겠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최근 삼성전자 경계현 DS(반도체)부문 대표는 사내 간담회에서 “추가 보상 지급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주요 기업 성과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런 발표가 날 때마다 직장가는 ‘돈 얘기’로 들썩였다. 'SK하이닉스 부장급은 성과급으로만 1200만원을 받는다' '은행 차장급은 최소 700만~800만원이다' '삼성전자 과장급은 성과급이 4000만원이 넘는다' 등 기본급과 성과급 비율로 계산한 액수들이 거침없이 공유되고 있다.
격차 벌어지며 직원도 기업도 ‘고민’
10년차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기본급의 100%인 약 3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적지 않은 액수지만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등에 올라온 게시물을 읽다보면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반도체나 바이오 같이 뜨는 산업이 아니니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같은 연차에 3~5배 차이가 나니 이게 뭔가 싶다. 대표·임원들도 다 외부출신으로 오는 마당에 공채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스타트업을 포함해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성과급 관련 게시물. [블라인드 캡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1/19/ecf4f659-bb22-404a-a5fa-a75376a48800.jpg)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성과급 관련 게시물. [블라인드 캡처]
영업이익 나면 무조건 준다?
국내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성과급은 이익이 났다고 무조건 주는 게 아니라 영업이익에서 세금과 채권자·주주의 몫을 제외한 재원인데 요즘 직원들은 성과급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성과급을 연말뿐 아니라 연초에 주는 건 꼭 성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위해 현재 포기 안 해”
실제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에 다니는 박모(33)씨는 “회사가 나를 책임질 것도 아니고 지금 받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많이 챙기는 게 당연하다”며 “무조건 선배라고 많이 받았던 연공제에 비하면 훨씬 건강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 전반에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개선)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직원의 만족도가 중요 기업평가지표가 된 것도 성과급 경쟁을 가속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용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성과급은 근로자에겐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동기부여가 되고 기업엔 경영상황에 따라 인건비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며 “회사의 이익과 근로자의 목표가 일치되도록 만드는 수단인 만큼 직급 파괴 등 성과·능력주의와 맞물려 점점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재용 교수는 “기업이 당장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할 수 없다면 실력있는 상사의 멘토링과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 도전적인 역할과 프로젝트 부여 등 직장에서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직원들이 돈을 적게 받아도 열심히 일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하고 이 일을 통해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희망 사다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