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반발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다시 비핵화 목표로 꺼내들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남북 고위급 물밑 접촉 ▶종전선언 ▶대북 백신 지원 카드를 연이어 띄우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고질적인 엇박자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일 화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발표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대한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CVID 원칙을 확인했다. 지난해 4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만 해도 CVID 대신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D)라고 썼는데 9개월 만에 미·일 간에 CVID가 부활한 것이다.
CVID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북한 비핵화 목표이지만, 북한은 검증(Verifiable)과 불가역성(Irreversible)이라는 요소에 크게 반발해 왔다. 이에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표현을 바꿨고, 바이든 행정부도 이에 호응했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명시된 이유다. 하지만 북한의 연이은 신년 미사일 시위 후 한국이 빠진 미·일 협의에서 CVID를 목표로 다시 공식화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후 언론 브리핑에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양국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 “외교에 여전히 열려 있다”면서도 “우리는 북한이 더 도발하지 않도록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을 향해 조건 없는 대화를 수없이 제안했으나 북한이 응하지 않은 걸 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위 당국자는 또 “앞으로 며칠 안에 행정부 내 다른 부처에서 더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21일 미·일 정상회담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미·일 정상은 북한 문제에서 긴밀히 공조하고 한국과도 보조를 맞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외에도 “안보를 비롯해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는 최근 미·일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연구에 합의하는 등 대북 공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도 한목소리를 내달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국의 종전선언 드라이브와 대북 유화 제스처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3년 만에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파기 엄포를 놓은 데 이어, 북한의 ICBM 시험발사 가능성(지난 21일 국회 정보위)까지 점쳐지는데도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중동 순방 중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순방을 수행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21일 이집트 현지에서 국내 언론 화상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조만간 (종전선언)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간 라인 등 남북 고위급 소통 채널이 건재하다는 전언을 비공식적으로 흘렸다. 국정원은 미국의 대규모 대북 백신 지원 의사도 공식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