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달러 넘는 곡물 50만t 약탈

우크라이나 농부가 지난달 16일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파종을 준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자포리자·루한스크·도네츠크 지역에는 150만t이 저장돼 있었다. 아직 약 100만t이 남아있다고 한다. 니콜라이 솔스키 우크라이나 농업정책부 장관은 "곡물 약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점령지에 있는 곡물들을 전부 가져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점령 당국은 곡물을 가져갈 수 있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지난 7일 자포리자 지역 베르단스크 시청에선 '개인 소유의 밀과 보리 압수에 관한 명령'을, 지난달 27일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크라스노야르스크 의회 농업정책위원회가 헤르손 지역 농부들로부터 농작물을 몰수하기로 결정했다.
채소도 쓸어가 병합 지역서 싸게 공급
러시아가 가져간 곡물들은 Z 표지(러시아군 의미)가 있는 트럭에 실려 러시아가 2014년에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 남부의 세바스토폴 항구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 항구에서 떠나는 거의 모든 러시아 선박이 우크라이나 곡물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탈취된 곡물을 실은 선박은 지중해에 있다. 시리아가 목적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중동 국가들에 공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집트 정부가 우크라이나에서 탈취된 곡식을 실은 2척의 러시아 선박을 되돌려보냈다.

지난 4월 말 러시아 합병지역인 크림반도 남부 얄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점령한 헤르손 지역에서 재배한 채소가 값싸게 판매되고 있다. 크림반도 당국 캡처
러시아는 값비싼 농기계까지 빼앗아가고 있다. CNN은 "러시아군이 멜리토폴시에서 대당 30만 달러(약 3억 7000만원)짜리 콤바인수확기 등 총 500만 달러(약 63억원)에 달하는 농기계 장비를 훔쳐갔다"고 보도했다.
‘파종 거부하면 참수’ 협박
곡물과 채소를 빼앗아가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막을 수가 없다. 러시아군의 폭력과 위협 때문이다. 자포리자 지역 농민인 로만 우마로프는 미국의 소리(VOA)에 "러시아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내 머리에 총을 겨누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악명이 높은 체첸 민병대는 지난 4월 헤르손 지역의 헤니체스크에 와서 농장의 재산을 전부 차지한 뒤 파종을 거부할 경우 참수한다고 협박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인근 지역의 곡물 창고가 미사일을 맞아 화재가 났다.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당국
젤렌스키 "러 굶주림 목표 삼아"

1932년 대기근 당시 굵주림으로 인해 바짝 마른 우크라이나 아이들. 홀로도모르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당시 스탈린 정권의 가혹한 수탈로 대기근이 발생해 많게는 1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굶주림에 견디지 못한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기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당시 식인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2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후 우크라이나인에게 대기근은 트라우마가 됐다. 90년이 지나 이제 러시아가 식량을 약탈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또 다른 대기근이 올까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