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슐랭 토크
매년 4~5월 제주고사리 꺾기 제철

지난 3일 낮 11시 한라산 중턱에서 제주도민 김길남씨가 직접 꺾은 제주고사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주산 건조 고사리는 소매가로 1㎏당 10만 원이 넘는다. 고사리를 말리면 무게와 크기가 10~20배 줄어들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 고사리철 막바지인 최근에는 12~13만 원에도 팔린다. 2만 원대인 수입산에 비해 5~6배 비싸다.
“고사리는 맛과 가격도 좋지만, 채취 작업 자체에 묘한 손맛이 있다”는 말이 있다. 손으로 꺾을 때마다 “똑”, “똑”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나서다.
“맛있는 고사리는 그늘을 좋아해”

제주고사리를 따는 손길. 프리랜서 장정필
고사리는 나물무침 자체로도 훌륭한 일품 요리지만 돼지고기 등과 함께 먹을 때 맛이 더 좋아진다. 최근 가장 인기인 메뉴는 고사리육개장이다. 담백한 돼지고기 뼛국물에 고사리를 풀어 넣어 끓인 고사리육개장은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국물에 메밀가루 넣어 걸쭉한 식감을 내는 게 특징이다. 타 지역의 육개장이 고추기름을 넣어 국물이 붉은 것과는 달리 연한 갈색을 띤다.
끓이고, 굽고, 무치고…다양하게 즐기는 제주고사리

제주고사리를 듬뿍 넣아 끓여낸 제주고사리 육개장. 프리랜서 장정필
국물에 녹아들어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풀어진 고사리는 흡사 소의 양지고기 같다. 적당히 찰기가 있으면서 죽죽 늘어나고 결대로 찢기는 식감도 일품이다. 제주향토요리 전문가 오순행(64)씨는 “고사리 육개장 맛의 비결은 원재료인 제주 고사리와 돼지고기의 빼어난 품질에 있다”고 말했다.
고사리육개장, 소 대신 돼지고기 넣은 담백한 맛

제주향토요리 전문가 오순행씨가 직접 말린 제주고사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사리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지만 서양에서는 독초로 분리해 거의 먹지 않는다. 때문에 고사리를 재료로 서양음식을 만들면 그때마다 새로운 요리가 탄생한다. 이중 볶은 고사리를 각종 치즈와 함께 치아바타 등의 빵에 싸 구워낸 파니니(이탈리아식 샌드위치) 요리는 치즈의 풍미와 고사리의 식감이 어우러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엔 가수 이효리가 한 방송에서 파스타에 고사리를 넣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임금님에게 진상하고 약학서적에도 소개

제주 고사리를 부재료로 넣은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인 파니니. 최충일 기자
1만8000신 무속신앙, 유교 제례에도 쓰여

제주고사리는 과거 궐채(蕨菜)라 불렀다. 참새가 다리를 오므린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사리는 제주의 무속신앙 외에도 유교식 제례에 올리는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줄기가 지게처럼 ‘Y자’ 모양이고, 고사리로 만든 전은 보따리 모양이어서 옛부터 음식을 편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고사리가 잘 자라는 곳이 무덤이 많은 오름이나 한라산 중턱이어서 혼인에는 잘 쓰지 않았다.
백이·숙제 절개 상징하는 음식으로 칭송

방금 따낸 제주고사리. 프리랜서 장정필
하지만 고사리는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독 성분 있어 생으로 먹으면 안된다. 삶고 말린 후 여러 번 씻어 먹어야 한다. 제주에서는 생고사리를 민물에 담궈 최소 12시간 독을 빼내는 작업을 한 후 봄볕에 바짝 말린 뒤 두고두고 보관해 먹는다.
“4만년 전부터 섭취”…삶고 말려 제독 지혜

물에 담궈 독을 빼낸 제주고사리. 프리랜서 장정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