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하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를 꼽습니다. 피카소와 달리에 비해 호안 미로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요. 그는 1893년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어요.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은 미로는 수년에 걸쳐 자신만의 화풍을 정의하게 되었는데, 특유의 상징적 모티브를 구축하며 독특한 우주론을 표현했습니다.
다양한 예술 집단과 시인들과 교류하며 사실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점차 소박하며 찬란한 색, 그리고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초현실주의풍을 완성해나갔죠. 또한 회화뿐 아니라 석판화·벽화·세라믹·야외 조각 등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어요. 호안 미로는 전통적인 회화 작법을 뛰어넘어 원대하고 창의적인 자유를 그려내어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받죠.
'2+5=7’이라는 작품을 보다 보면 예술가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그림을 봤을 때 낯설지 않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바로 2018년 오뚜기 진라면과의 아트 콜라보를 통해 라면을 먹을 때마다 그의 그림을 봤기 때문인데요. 이름은 잘 몰랐어도 그의 작품은 생활 속 디자인으로 밀접하게 들어와 있죠. 최근 그의 예술 세계 전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 전시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렸습니다.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미술관과 공동 주관하며, 교육 프로그램 디렉터 조르디 클라베르가 기획했죠.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엄선된 유화‧드로잉‧판화‧태피스트리‧조각 등 7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구성됐어요.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호안 미로는 특유의 상징적 모티브를 구축하며 독특한 우주론을 표현했다.
마이아트뮤지엄 한영지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이유를 설명했죠. “전시 제목인 여인, 새, 별은 미로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주제를 내포하는데요. 여인, 새, 별을 포함하여 달, 해, 별, 별자리와 탈출의 사다리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호안 미로를 연상케 하는 용어이며 현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매우 주요한 예술적 모티프입니다.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했던 고유의 모티프가 어떻게 처음 생성되고 진화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전시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호안 미로는 화가로 잘 알려졌지만, 조각·직물 등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표현한 아티스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로의 브론즈 작품과 태피스트리 작품도 선보였는데요, 한 큐레이터가 “작가가 채택한 기법과 매체의 다양성을 함께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미로 특유의 우주론이 어떤 모티프를 통해 표현되었는지 생각하며 회화 작품을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라고 관람 포인트를 설명했죠.
‘기호의 언어’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 작품. 호안 미로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꼭 어린 아이가 낙서를 해놓은 듯 단순화된 표현에 웃음이 나게 된다. 3개의 선으로 털을 표현한다든가 간단한 선으로 별을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전시 1부 ‘기호의 언어’ 섹션에서는 1940년대 자신을 표현할 시적 기호로서의 언어를 통합하는 데 매진한 흔적들을 추적합니다. 우주론적인 시야를 펼쳐내어 지상과 천체를 구분하는 지평선이 없는, 현실과 천상 세계를 통합하는 상징적인 표현을 하죠. 우주론에서 태양, 달, 별은 필수 요소입니다. 천체 또는 별자리를 은유하는 물감이 튄 자국과 다양한 색상의 점이 풍부하게 드러나죠.
기호의 언어’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람과 새’ 작품. 호안 미로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꼭 어린 아이가 낙서를 해놓은 듯 단순화된 표현에 웃음이 나게 된다. 3개의 선으로 털을 표현한다든가 간단한 선으로 별을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꼭 어린아이가 낙서를 한 듯 단순화된 표현에 웃음이 납니다. 3개의 선으로 털을 표현한다든가 간단한 선으로 별과 강아지, 우주를 표현한 것도 눈에 띄죠. 초현실주의의 기본 모티브는 무의식적인 세계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 고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인데요. 무서운 전쟁을 겪었어도 그의 작품에는 유머가 깃들어 있죠. 별과 새에 대한 상징은 거의 모든 작품에 나타납니다. 별은 사람의 정신을 상징하는데, 미로는 별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세상의 혼돈과 평온이 동시에 만들어진다고 봤죠. 새는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로 그의 우주론에 지상과 천상의 연결은 중요한 요소인데요.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의 욕구가 반영된 겁니다.
기호의 언어를 연구하며 테크닉적인 요소에 집중한 실험적인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불규칙한 붓 터치, 흐릿한 점, 자유롭고 직관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게 특징이다.
2부 ‘해방된 기호’ 섹션은 기호의 언어를 연구하며 테크닉적인 요소에 집중한 실험적인 작품이 전시됩니다. 불규칙한 붓 터치, 흐릿한 점, 캔버스에 흘러내리고 사방으로 튄 페인트 방울, 손자국같이 자유롭고 직관적인 표현이 돋보이죠. 이는 즉흥적인 기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철저히 계획된 표현법이었다고 해요. 그는 회화·판화·조각·세라믹·직물 등 여러 재료로 실험하며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냈고, 자신의 스타일을 원하는 매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회화를 그릴 땐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물감을 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효과를 좋아하기도 했어요.
‘2+5=7’이라는 작품은 시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끕니다. 미로는 ‘2 더하기 2는 4가 되지 않아’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어린아이들에게 ‘1 더하기 1이 뭐야’라고 질문했을 때 2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지만 창문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는 그림은 상상력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그림을 보다 보면 예술가들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브제’ 섹션에서는 일상의 용품을 다른 요소와 함께 배치하여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 조각품을 선보인다.
3부 ‘오브제’ 섹션에서는 일상용품을 다른 요소와 함께 배치하여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 예술가의 조각품이 선보입니다. 오브제에 대한 미로의 열의는 대단했죠. 작업실이 위치한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항구 도시 팔마데마요르카 근처의 17세기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손 보테르’를 매입해 온갖 사물을 수집, 보관하고 회화의 기호를 조각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미로는 수집광이었습니다. 손자·손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항상 산책한 뒤 손에 무언가 한아름 들고 돌아왔다고 했죠. 주워온 물건을 모티브로 여러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가 만든 조각 작품들은 청동의 표면을 그대로 남겨둔 것도 있지만 ‘탈출하는 소녀’처럼 빨강‧노랑‧파랑‧흰색‧녹색을 채색해 원색을 사용한 작품도 볼 수 있죠. 지중해에서 작업하는 많은 작가들은 원색을 주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미로 역시 원색을 활용한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원색을 채색한 오브제로 머리 부분을 수도꼭지로 표현한 게 인상적인 ‘탈출하는 소녀’.
‘탈출하는 소녀’는
머리 부분을 주워온 수도꼭지로 표현한 게 인상적인데, 수도꼭지는 틀면 물이 뿜어져 나오죠. 아이디어가 샘솟는 미로의 머리를 생각할 수도 있고, 머리카락을 표현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로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녹은 금속을 붓기 전에 절개할 수 있는 로스트 왁스 기법으로 조각을 주조했어요. 조각을 만들 형태 위에 왁스와 석고를 붓고, 석고가 마르면 열을 가합니다. 그럼 왁스가 녹아내리며 석고 틀 안에 구멍이 생기는데 만들었던 모형 그대로 청동 주물을 들이붓고, 다 마르면 석고 틀을 깨죠. 그럼 처음 만들었던 왁스 모형대로 청동 조형물이 만들어집니다. 미로는 오브제와 사물을 향한 관심으로 아크릴과 노끈, 털실로 작업한 작품 ‘소브라테이심’ 연작도 작업했죠.
다양한 흑색을 사용하여 검은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그의 검은색은 인물 형상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구도를 명확하게 한다.
다양한 흑색을 사용하여 검은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그의 검은색은 인물 형상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구도를 명확하게 한다.
4부 ‘검은 인물’ 섹션에서는 다양한 흑색을 사용하여 검은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죠. 특히 미로의 검은색은 인물 형상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구도를 명확하게 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초상화처럼 보이지도 않고 모양이나 그 속성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죠.
호안 미로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달빛 아래의 카탈루냐 농부’의 경우 자세히 보면 모자 부분과 검정색 선이 사람의 얼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검은색을 많이 사용하고 점점 더 단순하게 가장 최소한의 것으로 강렬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미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은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장대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상상을 해볼 수 있죠. ‘달빛 아래의 카탈루냐 농부’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농부일까 싶지만 모자 부분과 검은색 선이 사람의 얼굴이 연상되는 느낌이 들었죠. 달빛을 표현한 부분도 유심히 보면 낫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요. 미로는 검은색이 회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보고, 주변에 있는 색깔들은 검정을 도와주는 색이라고 여겼죠. 이 작품에는 녹색·빨간색·파란색이 사용됐는데, 농부가 열심히 농장을 일궈 풍성해진 초목을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나가는 길에는 컨테이너 박스와 유사한 각기 다른 직사각형의 안전 크레이트가 놓여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마이아트뮤지엄으로의 운송을 담당한 총 39개의 안전 크레이트가 전시 일부로 포함돼 오브제이자 포토존으로 자리한 거죠. 작품 훼손 방지와 안전한 이동에 힘쓰는 미술관의 일사불란한 현장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에요.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빨간색이 인상 깊어서 출구 쪽에 특별히 ’크레이트 섹션’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작품이 바르셀로나에서 운송되고 어떻게 작품 포장이 해체
되었는지 볼 수 있는 영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호안 미로: 여인, 새, 별’에서는 40년에 걸쳐 집성화된 그의 모티프와 화풍의 뚜렷한 발전 양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표 모티프인 여인, 새, 별을 비롯해 태양, 달, 별자리, 사다리까지 그림 속에서 발견해보는 재미를 느껴보세요. 시적인 기호로 원대한 자유를 그려내는 호안 미로는 작품의 해석을 관객에게 맡기는데요, 시인이 표현하면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미로의 시적 표현을 관람객 저마다의 시적 허용과 상상으로 자유롭게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기간 9월 12일(월)까지(9월 10일 추석 당일 휴관)
장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층 마이아트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6000원, 어린이 1만2000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마이아트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