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는 국제 망신”(진중권) “반페미는 공약, 지키는 게 당연”(서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률 회계사, 권경애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강양구 TBS 과학전문 기자는 2년 전 나온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조국 흑서)에서 조국 사태를 위시한 진보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며 ‘장외 야당’ 노릇을 자처했던 흑서 저자들은 새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담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진행됐다. 권경애 변호사는 허리통증으로 불참했다. 전화상으로 저자들을 격려했다. 대담 초반 저자들은 “정권을 내준 민주당이 여전히 강성지지층에 기댄 채 팬덤 정치에 함몰됐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지난 12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 저자 김경률 회계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강양구 TBS과학전문기자가 중앙일보 상암사옥에 모여 대담을 펼쳤다.
지난 1편 이후 대담이 진행되며 저자들은 윤석열 정부와 정의당, 시민사회를 향해 매서운 비판들을 쏟아냈다. 올해 초 정의당으로 돌아간 진 전 교수와 보수 지지를 공언한 서 교수는 대담 중 격론을 벌이며 부딪히기도 했다.
진 전 교수가 윤석열 정부 비판에 앞장섰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검찰 출신’과 ‘서울대·5060·남자’를 중용한 것을 두고 “충복들과 쉰내가 팔팔 나는 사람들만 뽑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대선 막판 20·30여성들이 국민의힘에 등 돌렸던 경험을 잊은 채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 등 극우적 색채를 띤 정책을 이어간다”며 “MB의 ‘중앙차선제’,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영삼의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등 과거 보수 정권이 추진했던 실용·개혁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좌·우 방향성을 반성할 게 아니라 ‘극단성’을 반성하며 개혁적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계사도 “윤석열 정부가 노태우 정부 정도를 목표로 삼았으면 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윤석열 내각 에 대해 "쉰내가 팔팔나는 '서·오·남' 정부"라고 비판했다.
강 기자 역시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거울상’이 되어간다”며 “대통령 취임사에서 기후위기 논의가 빠진 점은 곱씹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기자는 “윤 정부 (원전) 정책이 단순히 ‘문재인 정부 반대’를 위한 탈원전이라는 인식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 전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진보·보수를 떠나 ‘반 페미’ 등을 외치며 세계가 나아가는 길에 역행해선 안 된다”며 “기후위기 대응 역시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문제 관점에서 봐야지, 기업의 시선에 갇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서 교수는 “탈원전과 반 페미 노선은 대선 공약이었기에 실천은 당연한 일”이라며 반론을 폈다. 이에 진 전 교수는 “국민이 윤 정부가 낸 모든 공약에 다 동의한 것이 아니”라며 “특히 반 페미를 주창하며 해외 언론에서 ‘여성혐오 대통령’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건 국제 망신”이라고 맞받아쳤다. 이를 두고 두 저자는 한동안 격론을 펼쳤다.
저자들은 새 정부에 기대감도 드러냈다. 강 기자는 “새 정부 들어 관료 집단이 전면 배치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고, 진 전 교수 역시 “새 정부에 별 기대는 없지만, 지난 5년간의 ‘연성독재’로 망가진 자유민주주의 시스템만 정상화하고 복원만 하더라도 이는 윤석열 정부 업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거대 양당 문제는 결국 정의당을 비롯한 제3의 정치 세력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진 전 교수는 “‘검수완박’ 국면에서 정의당이 민주당 프레임에 갇혀 제 역할을 못 한 채 끌려다녔다”며 “정의당이 필리버스터를 막는데 가담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진보의 자기부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 기자도 “일련의 사태를 통해 정의당이 어떤 식으로든지 한번 흔들어져, ‘헤쳐모여’가 필요하지 않나”라며 “민주당과 별다를 게 없어진” 정의당의 정체성 문제를 지적했다.
서민 단국대 교수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대담에서 윤정부의 '탈원전''반페미'노선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 '무용론'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격론을 펼쳤다.
서 교수는 “정의당 의석수가 많지 않아 (비례대표를) 신중하게 뽑았어야 했다”며 “능력도, 업적도 없는 20대 류호정 의원을 비례대표 뽑은 건 (정의당에) 낭비”라고 비판했다. 이에 진 전 교수는 “류호정은 많은 일을 했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 기억나는 의정활동이 있느냐”라며 서 교수 말을 반박했다. 진 전 교수가 “20대 여성 의원의 의정 활동을 ‘무능’이란 틀로 찍는 건 여성혐오”라고 지적하자, 서 교수는 “20대는 배우고 업적을 쌓아야 할 나이”라고 맞받아쳤다. 두 저자는 치열한 격론을 한참 이어갔다.
김 회계사는 “검수완박 국면에서 ‘위장탈장’은 사사오입에 준하는 ‘입법테러’로, 이에 가담한 정의당에 정나미가 싹 떨어졌다”며 “지난 5년간 이런 진보의 유일한 자기 동력인 지적·도덕적 우위가 유실됐다”고 비판했다.
조국흑서 저자들은 ″'조국사태'와 '윤미향 사건'으로 한국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조국사태’ 이후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실종된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 회계사는 “(시민사회를 붕괴시킨 건) 조국사태도 조국사태지만, ‘윤미향 사건’의 충격이 컸다”며 “시민사회가 부패에 둔감했고, 드러난 부패를 심지어 덮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진보의 세 기둥인 노동·학생·시민운동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정책 수립·실행에 참여한 시민사회가 권력과 유착돼, 지난 정부에서 게걸스럽게 해 먹다가 들통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야 당파싸움에서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할 시민사회가 기득권화해 진보의 재생산 구조가 끊겼다”고 평가했다.
한편 강 기자는 “여전히 최저임금보다도 못한 활동비를 받고 활동하는 밑바닥 시민운동가들의 노력과 헌신마저 매도되는 게 화나는 지점”이라며 “시민운동 상층부 명망가들이 과거 10년 보수 정권에서 얻은 ‘아우라’와 ‘권위’를 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서 교수는 “진보 진영의 이런 침체 속에서 보수 진영도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건전한 시민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20·30세대 여성의 진취적·진보적 태도에 희망을 걸고 있다”며 “우리 같은 (지나)갈 세대 대신, 이들에게 맞는 진보의 새로운 서사가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흑서를 펴낸 지 2년이 흘러 정권이 바뀌었지만, 저자들은 ″기대도 후회도 없다″라는 자조섞인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조국 흑서 2년, 그들에겐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강 기자는 “앞으로 5년 뒤 조극 흑서를 썼던 걸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며 “4년 뒤쯤 ‘다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같은 책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 교수는 “흑서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게 됐다”며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놨다. 김 회계사는 “오죽하면 (조용히 살던) 나까지 이렇게 됐을까 싶다”며 “(조국사태 등은) 우리가 모두 공범이며 사회가 건강하게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조국 흑서 집필은 잔머리가 아닌, 정치적으로 건전한, 올바른 프레임을 짜는 일이었고, 그것이 갖는 힘이 있었다”고 평했다. 진 전 교수는 “민주당의 반성, 그리고 윤석열 정부보다 더 나은 정부 출범을 기대했지만, 둘 다 아니게 됐다”면서도 “(조국 흑서를 썼을 당시) ‘그래야만 했나?’라고 묻는다면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후회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라는 자조 섞인 소회를 밝혔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이세영·이가진PD, 김신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