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차트가 표시되고 있다. 최근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사흘째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5월초 대비 95%에 가까운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2022.5.12/뉴스1
몸집은 비슷해졌지만 까다로운 상장 절차와 공시 의무가 있는 증권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시장은 사실상 ‘무법지대’다.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업법 제정안(7개)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4건),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2건) 등 13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증권시장의 기업공개(IPO)와 비슷한 국내 가상자산 공개(ICO)의 경우 공시 및 불공정 거래 규제가 없어 사기 청약과 불완전 판매, 시세 조종 등이 모두 방치되고 있다. 국내 ICO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싱가포르 등 국외에 회사를 세운 뒤 국내에서 내부자 거래나 사모 청약을 하는 등 사실상 장외 판매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발행되는 암호화폐에 대한 증권신고서 격인 ‘백서’에도 중요 투자 위험을 기재할 의무는 없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테라의 백서를 보면 투자 위험성에 대해선 기재돼 있지 않고 이 프로젝트에 대한 낙관적 전망만 설명한 것이 전부”라며 “심지어 백서가 영문으로만 제공돼 언어 장벽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코인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기 위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기와 사업실패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느냐”라며 “법적 공백으로 인해 투자자의 피해가 멈추지 않고 있는 만큼 가벼운 형태로라도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증권 시장처럼 공시주체로서의 발행인을 정의하고, 백서(공시)를 의무화하고, 중요투자정보를 의무공시대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폐빔(상장 폐지를 앞둔 코인 가격의 급등 현상)’을 노리고 최근 루나와 테라 거래에서 벌어진 ‘단타 폭탄 돌리기’는 최소한의 상장 규정이 없어서 발생한 투자자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규정처럼 동시호가나 단일가 매매 등 최소한의 퇴출 기회만 주는 정리 매매 기간에 대한 정의가 있었더라면 이런 투기적 수요가 극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자본시장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발행과 거래가 한 곳에서 이뤄지는 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코인을 발행하는 거래소가 발행인의 백서를 평가하고 승인하는 한편, 투자자들이 해당 거래소의 플랫폼에서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주관·심사·거래·감독이 모두 거래소 한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김 연구위원은 “전문적인 기관이 심사하고 예탁·청산·결제·중개까지 모두 하는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며 “일관성 없는 상장 심사와 기습 상장을 반복할수록 시장에 불신을 주고 거래소가 갖는 게이트 키핑 기능이 희석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민혁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디지털자산 관련 쟁점들이 여러 가지인 데다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 모든 쟁점을 아우르는 단일 법안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며 "국회에 현재 관련 법안이 13개 발의돼 있는데 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가능한 빨리 법안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