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탁엑스 검수센터에서 '범고래'란 별명이 붙은 인기 스니커즈 '나이키 덩크 로우 블랙'를 검수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스탁엑스가 공개한 정품 감별법
검수센터에 직접 가서 확인했습니다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막상 중고거래·리셀·명품 이커머스 마켓에서 상품을 구매하려고 할 땐 '과연 정품이 맞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브랜드가 인증한 공식 판매루트가 아니다 보니 가품일 확률이 있고, 이 경우 손해를 고스란히 구매자가 떠안아야 한다. 실제로 최근 거대 플랫폼의 가품 판매 이슈가 속속 이어져 정품 소비자 입장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정품 검수 능력은 관련 플랫폼의 사활을 건 핵심역량으로 떠올랐다.
가품 논란, 무엇이 있었나
가품 논란은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엔 럭셔리 상품과 한정판 스니커즈가 있다. 먼저 국내에선 지난 2월 무신사와 네이버라는 거대 회사 두 곳이 맞붙은 가품 판매 논란이 있었다. 무신사에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피어 오브 갓'의 로고 티셔츠를 구매한 한 소비자가 리셀 플랫폼 네이버 크림에 되팔기 위해 검수를 의뢰했으나, 크림에서 이를 가품으로 판정하고 판매를 거부한 것. 이후 무신사는 판매 제품을 들여온 해외의 티셔츠 판매처(팍선) 및 국내외 검증 전문기관의 정품 인증서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두 달간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결과는 크림의 승. “무신사의 판매 제품은 가품”이라는 피어 오브 갓 본사의 판정으로 크림은 이후 신뢰도가 높아지며 사용자가 급상승했다.
해외에선 나이키가 한정판 거래 글로벌 플랫폼 스탁엑스를 공격 중이다. 지난 2월 나이키가 자신의 인기 스니커즈 이미지를 사용한 스탁엑스의 NFT를 인정할 수 없다며, 미국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게 시작이다. 지난달엔 이 소송에 위조 및 허위광고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나이키가 스탁엑스에서 직접 구매한 500족의 스니커즈 중 가품이 4족 섞여 있었다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일각에선 "나이키가 말을 듣지 않는 스탁엑스에게 '가품 판매'라는 치명타를 입혀 항복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수 전쟁이 시작됐다

스탁엑스의 검수 인증 택. 박영민 기자
흥미로운 것은 "철저하게 검수한다"면서 막상 검수센터를 공개를 꺼린다는 점이다. 네이버 크림, 무신사의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 최근 검수센터를 설립한 번개장터 등 대부분의 플랫폼이 "영업 비밀"을 이유로 들며 공개를 거부했다. 공개 요청에 응한 곳은 단 한 곳, 글로벌 시스템을 갖춘 스탁엑스다.
스탁엑스는 2016년 미국에서 시작한 한정판 리셀 플랫폼이다. "검수센터는 우리의 근간"이라는 최홍준 스탁엑스코리아 대표의 말처럼 회사 설립 초기부터 검수 시스템을 경쟁력으로 보고 공을 들였다. 스탁엑스는 미국 본사의 '드롭 오프 스토어'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11개의 검수센터를 운영한다(드롭 오프 스토어까지 하면 12곳). 한국의 검수센터는 그중 마지막인 11번째 센터다. 국내 리셀 플랫폼들의 경매와 검수 시스템의 롤모델이 된 것이 바로 스탁엑스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할 말 많은 스탁엑스, 검수센터를 공개했다

검수센터에 쌓여있는 각종 스니커즈 박스들. 박영민 기자
센터는 지난해 9월 스탁엑스의 국내 진출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글로벌 1위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의 명성에 걸맞게 가장 많은 검수 제품은 스니커즈다. 그동안 센터에 입고된 제품 중 가장 비싼 스니커즈는 '나이키 조던1 트로피룸'. 가격은 무려 700만~800만원에 달했다.
다음으로는 슈프림·베이프 등 고가의 스트리트 브랜드 의류가 많고, 고사양 게이밍 마우스 등 전자제품, 소장용 아이템의 대표 격인 레고의 순으로 비중이 나뉜다. 최근엔 Z세대 사이에서 인기인 포켓몬 카드도 종종 입고된다고.
가품, 어떻게 가려낼까

한 검수자가 자신의 데스크에서 스니커즈를 검수하고 있다. 그들의 영업 노하우를 지켜주기 위해 상단은 촬영하지 않았다. 검수 데스크는 스탁엑스 글로벌이 제작해 각 나라에 보내준다. 박영민 기자

박스의 형태, 신발을 감싼 종이의 재질, 신발의 외형과 부자재까지 검수 매뉴얼과 비교하며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검수가 진행됐다. 박영민 기자

이수향 검수 매니저가 나이키 스니커즈의 냄새를 맡고 있다. 그는 "스니커즈 소재와 종류에 따라 특유의 냄새가 있어, 냄새만으로도 정품과 가품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민 기자
1차 검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수향 매니저는 총 3가지 스니커즈의 검수 시범을 보여줬다. 제일 처음 눈으로 박스부터 신발을 감싼 종이, 신발의 외형을 꼼꼼히 살폈다. 디자인과 갑피 상태, 봉제 형태와 실 종류, 신발 바닥의 형태와 상태, 좌우 양쪽 신발의 길이 확인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후 여분으로 달린 끈·태그 등 부속품의 상태와 부착 방식까지 살폈다.
신발 냄새를 맡아보는 건 기본이다. 이 매니저는 "정품 신발에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며 "이 냄새는 꽤 정확해서 박스를 뜯는 순간부터 진품인지 가품인지 어느 정도 구별이 된다"고 했다. 이 과정이 끝나면 UV 라이트에 신발 전체를 비춰본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을 잡아내는 과정이다.
검수 필살기는 6년간 쌓은 빅데이터
스탁엑스의 차별점은 3차 검수에서 드러났다. 마지막까지 가품을 걸러내는 거름망은 지난 6년간 글로벌 11개 검수센터에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DB)다. 센터의 한 직원은 "검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할 수 있다"며 "보기에 (정품 여부가) 아리송한 아이템이 입고됐을 땐 홍콩에서 근무하는 널리지 팀에게 사진과 화상 회의로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면 널리지 매니저가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검수를 진행하고, 정품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려내게 된다. 이런 과정은 다시 하나의 데이터가 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쌓인다. 최 대표는 "검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얼마큼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라며 "수 천개의 스니커즈 중에서 진품과 가품을 분류하는 것은 결국 데이터”라고 했다.
스탁엑스는 사내 투자액의 상당 부분을 검수팀에 투자한다. 검수센터의 모든 직원은 회사가 직고용한 정직원. 회사는 이들에게 비상장주식도 배당했다. 검수자는 입사를 위해 총 3번의 채용 면접을 거친다. 어렵게 입사한 뒤에도 5주간의 강도 높은 교육을 거쳐 실무에 투입되는데, 이때도 개인에게 주어진 검수 KPI(핵심성과지표)를 완수할 때까지 선배와 함께 일해야 한다. 검수 숙련도를 쌓는 수련 기간이다.
직원들의 이력은 저마다 다양하다. 유명 스니커즈 스토어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던 사람과 레스토랑 사장, 잘 다니던 대기업을 걷어차고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서울 홍대 조던 매장과 명동 나이키 플래그십스토어 매니저 출신인 이 매니저는 "검수 직원들의 배경은 다양하지만, 스니커즈를 좋아하는 건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열정과 주관이 없으면 일하기 힘들다"며 “센터에 근무하면서 내 사업에 대한 꿈도 키우고 있다”고도 말했다. 최 대표는 "교육기관이 딱히 없어 결국 스니커즈에 열정이 많은 사람들 위주로 검수팀을 구성하게 됐다"며 "우리를 포함해 센터마다 스니커즈 문화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검수팀에 포진해있다. 모두 이 시대 트렌드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