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32엔 뚫렸다, 엔화 가치 20년 만에 최저

엔화값이 달러당 132엔을 뚫고 추락했다. 20년여 만에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으로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려는 투자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일본은행(BOJ)이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정책을 고수하는 한 엔화값 약세는 계속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뉴욕 외환시장에서 6일(현지시간) 엔화값은 달러당 132.18엔으로 급락했다. 2002년 4월 4일(달러당 132.36엔)이후 20년 2개월 만에 최저치다. 연초(115.32엔)와 비교하면 엔화가치가 15% 이상 떨어진(절하) 셈이다. 7일 한국시간 오후 4시 15분 현재 아시아 시장에서도 엔화는 달러당 132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의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 확대다. 글로벌 투자자가 엔화를 팔고 미국 달러로 표시된 미국 국채 등을 사들이면서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6일(현지시간) 연 3.049%로 한 달여 만에 3% 선을 재돌파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반면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대다. WSJ에 따르면 6일 일본 10년물 금리(연 0.245%)는 올해 들어 0.173%포인트 상승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돈줄 죄기(기준금리 인상 등)에 나서지만, 일본은행 홀로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한 영향이 크다. BOJ는 10년물 국채금리 상한을 0.25%로 정하고, 이 이상 오르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유가 급등도 엔화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중 하나다. 국제 유가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경상수지 적자 발생하면 일본 기업은 대금 지급을 위해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야 한다. 엔화값 하락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외 전문가들은 Fed가 고강도 긴축을 예고한 만큼 엔화가치가 달러당 135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Fed의 긴축 기조에 미 국채 금리 오름세가 이어지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지속할 수 있다”며 “엔화값은 단기간 달러당 135엔선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화가치 하락을 막으려면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조만간 정책을 바꾸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섣불리 방향을 틀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20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엔화 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 100엔당 원화값(원·엔 재정환율)은 전날보다 10.6원 오른 946.1원에 마감했다. 원화가치가 100엔당 950원 아래로 하락한 것은 4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편,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은 국내 채권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7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1%포인트 오른 연 3.232%에 마감했다. 종가기준 2012년 6월 8일(연 3.25%) 이후 최고치다. 10년물(연 3.538%)도 8년 2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달러 강세로 원화값은 하락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15원 하락한 달러당 1257.7원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