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잖아도 검찰 공화국이란 비판이 빗발치는 데다, 이 원장 본인도 자리를 고사했다는데 윤 대통령이 굳이 임명을 강행한 이유가 뭘까.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 요직을 독식한다는 비판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마땅한 자리들에 마땅한 인물들을 앉혔다는 뜻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검찰 재직 시 굵직한 경제범죄 수사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해 준법경영환경을 조성한 적임자”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실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력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법조계 안팎에선 이 원장에 대해 “금융·조세 범죄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 그를 규정하는 건 ‘윤석열 사단의 막내’라는 꼬리표다. 1972년생으로 2000년 사법시험(42회)에 합격한 이 원장이 윤 대통령과 처음 연을 맺은 건 2006년이다. 당시 대검 중수1과장으로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수사 중이던 윤 대통령 수사팀에 군산지청 소속이던 이 원장이 합류했다. 그의 ‘칼 솜씨’를 눈여겨본 윤 대통령은 이후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도 그를 불러 호흡을 맞췄다.
보스 기질 강한 윤 대통령과 일하던 이 원장은 대선 후인 지난 4월, ‘검수완박’에 소극적이던 당시 검찰 수뇌부를 향해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처럼 사라져 버린 분들을 조직을 이끄는 선배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공개 비판하며 사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강골 칼잡이의 금감원장 임명을 놓고 여권 일각에선 ‘사정 국면의 서막’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금융권 사정에 밝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국민의힘 경선 초반, 대장동 사건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이 건만으로도 30여명은 구속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금융감독기구나 수사 기관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며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비단 대장동뿐 아니라 M&A를 빙자한 머니게임이 판을 치는 등 지금의 금융시장이 매우 어지럽다는 게 윤 대통령의 판단”이라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이 전 검사를 금감원장에 앉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윤석열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을 높을지라도, 다른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기 어렵게 될 우려도 있다. 여러 민감한 정보를 캐치한 금감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속전속결로 이를 범죄를 밝혀내는 건 가능하겠지만, 빠른 속도는 주변을 살필 기회를 앗아가게 할 수도 있다. 정부 부처들의 업무 처리엔 효율성 만큼이나 서로간의 견제나 균형이 중요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를 자아낸다.
비단 금감원뿐 아니다. 새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강수진 고려대 로스쿨 교수 또한 검사 출신으로, 과거 윤 대통령과 같은 지청을 다니며 카풀 통근한 인연이 있다.
인사 영역에서 검찰출신의 과도한 발탁은 이미 도마위에 올라있다. 인사 추천과 검증 모두를 검사나 검찰 출신이 담당하는 구조여서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인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 인사비사관인 이원모 전 검사 라인을 통해 주요 보직에 대한 인선을 추천하면 자타공인 ‘윤의 남자’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점에 있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검증한다. 인사 검증 작업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대통령실 직원들을 비롯한 행정부 공무원들의 기강을 지휘하는 공직기강비서관도 이시원 전 검사다. 여기에 민정수석의 역할 다수를 인수한 법률비서관도 주진우 전 검사고, 대통령실의 내실을 챙기는 총무비서관(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과 부속실장(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도 검찰 가족이었다.
이뿐 아니다. 정권에 따라 시류를 타 온, 정치적으로 민감한 조직인 국정원의 2인자인 기획조정실장에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직 시절 대검 형사부장이었던 조상준 변호사가 발탁됐다. 그는 과거 김건희 여사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내각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선 캠프의 핵심 참모였던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원래 검사를 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법무부에선 한 장관 외에 이노공 차관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낼 때 4차장검사로 일했다. 장관급인 국가보훈처장에도 검사 출신으로 대선 캠프에서 일한 박민식 전 의원이 임명됐으며, 차관급인 법제처장에는 윤 대통령과 대학·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완규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이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런 윤 대통령의 용인술과 관련해 당장 민주당에선 “인사를 측근 검사들에 대한 자리 나눠주기로 여긴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검찰은 모든 기관과 직무에 유능한 만능 인재인가. 검찰 출신이 아니면 대한민국에 유능한 인물은 씨가 마른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윤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자 그대로 검찰 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안에서도 불만이 작지 않다. 익명을 원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발탁된 검찰 출신 대부분이 윤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라며 “사적 인연이 과도하게 인사에 작용한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많은 우려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인재 풀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