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세계 정치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전민규 기자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연방(소련)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동서 냉전의 최절정에서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음에도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직감하고 과감한 개혁·개방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는 “세계 정치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안목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충정로의 서울국제포럼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별세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론 개혁·개방을 추구해야 ‘평화를 지향하는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생전에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때마다 대화 주제는 늘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었다”면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홍구 "고르바초프는 늘 묻고 경청한 지도자"

1995년 2월 7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그린그로스창립기념 심포지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이홍구 당시 국무총리와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사진=이홍구 전 총리 제공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어진 계기는 무엇인가.
"정치 지도자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주요 어젠다를 논의하기 위한 ‘마드리드 클럽’ 결성을 위해 스페인에서 만나며 친분이 깊어졌다. 당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마드리드 클럽 결성에 의욕적으로 임했는데, 결성 준비 과정에서 2~3차례 만나며 당시의 국제 현안과 정치 체제, 민주화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2001년 결성된 마드리드클럽은 탈냉전 후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경제 격차, 핵확산 방지, 환경 문제 등을 다루는 전직 국가수반의 모임으로 자리했다."

1995년 2월 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한 한국그린그로스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왼쪽 둘째)와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왼쪽 넷째). 사진=이홍구 전 총리 제공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어떤 지도자였나.
"그는 호기심이 왕성했고, 이런 호기심을 각계 전문가에 대한 자문을 통해 해결했다. 정세 변화에 민감하고 국제 사회의 판을 보는 능력이 탁월했음에도 항상 겸손했고, 늘 주변의 의견을 묻고 경청했다. 총리 시절 집무실까지 찾아와 환경 문제와 녹색 성장에 대해 자문하며 끝없이 질문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올림픽'은 1990년 한국과 소련 간 수교의 매개로 작용했다. 특히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적극 지지했고, 소련의 올림픽 참여로 동서 화합의 장이 마련됐다. 이 전 총리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지지와 소련의 참여로 서울올림픽은 동구권과 서구권이 대거 참여하는 화합의 무대가 됐고, 덕분에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바탕으로 동구권 국가와 연이어 수교를 맺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화·경제발전에 큰 관심"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울포럼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유독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한국의 변화상을 바라보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를 고집한다면 소련의 미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군사 독재의 시대를 넘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을 일종의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정치·경제 개혁 시도는 끝내 실패했고, 소련 붕괴의 장본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가 꿈꿨던 개혁은 기존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일종의 ‘체제 전환’ 시도였다. 급격한 변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공산당 안에서 압도적인 장악력과 힘을 갖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부 장악에 실패했고, 당시 소련에선 ‘고르바초프의 연약한 리더십 때문에 국력이 쇠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상은 높았으나 리더십 발휘에 실패한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대화에서도 "한국의 민주화 모범적"

2009년 세계 평화의종 공원 준공식 참석차 방한한 미하일 고르바포츠 전 소련 대통령을 김포공항 귀빈실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는 이홍구 전 총리. 사진=이홍구 전 총리 제공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당시에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평화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그는 마지막 대화에서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모범적’이라고 평가했고, 올림픽에 이어 한국이 월드컵까지 무사히 끝내며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임종 직전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다 소련 붕괴와 내부 비판에 시달렸다. 또다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한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일관성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끝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장례식 불참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이념, 그리고 그의 지향점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 같다. 다만 러시아 언론인이자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운구 행렬 가장 선두에 섰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언론인이 앞장서 배웅한 건 ‘평화의 상징’으로 기록될 만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