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가장 중요해” 화웨이 회장의 말말말

반드시 생존을 최우선 강령으로 삼아야 한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창업자의 말이다. 지난달 런정페이는 회사 내부 통신망에 “화웨이에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면서 현재 회사가 직면한 위기와 미래의 난관에 대해 경고했다. 또 반드시 생존을 최우선으로 향후 3년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visual china]

[사진 visual china]

런정페이가 말하는 ‘겨울’은 무슨 의미일까. 그가 말하는 겨울은 평화의 시대에도 위기의식을 유지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를 가지라는 말과 같다. 런정페이는 지난 2000년대 초반 발생한 닷컴 버블 붕괴, 2003년 IT 부품업계의 공급 과잉과 주요 제품 단가 하락,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발발 등에 있어서 여러 차례 ‘겨울’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경고한 바 있다. 당시에도 화웨이는 고도성장기에 있었지만 어떠한 위기 상황은 항시 발생할 수 있으므로 철저한 대비를 하라는 뜻에서 여러 차례 위기설을 꺼냈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조금 다른듯하다. 런정페이는 전처럼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며 전례 없는 위기와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도대체 화웨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첫째, 공급망 위기다.

2019년 5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화웨이와 그 관계사를 잇달아 거래 제한 리스트에 올리며 수출 통제 범위를 확대했다. 첨단 5G 칩을 공급받지 못하고 구글모바일서비스(GMS)를 활용하지 못하면서 한때 글로벌 시장 1~3위를 수성했던 화웨이 스마트폰은 결국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존망의 기로에 섰다.

화웨이는 스타 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휴대전화 사업부 ‘아너’도 정리 매각했고, 이로 인해 단말기 사업 수입은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2021년 스마트폰, PC 등으로 구성된 소비자 부문 매출은 2434억 달러(약 46조 6768억 원)로 기록됐으며, 이는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의 2021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31%에서 10%로 전년 대비 68% 급감했다.


화웨이 단말 사업 수익 변화폭. [그래프 ICT解讀者]

화웨이 단말 사업 수익 변화폭. [그래프 ICT解讀者]

반도체 공급 위기는 화웨이의 통신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보안’을 명분으로 ‘클린 네트워크’를 내세우며 각국 사업자에게 화웨이 5G망 네트워크 사용을 금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또 5G 기지국 장비에 들어가는 첨단 칩을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 하게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델오로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화웨이의 무선 장비 시장점유율은 2019부터 20%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5G 네트워크 구축 수요가 급증한 지난 2019년과 2020년, 화웨이의 사업 수익은 전년 대비 각각 3%, 0.2%로 소폭 성장하는 데 그쳤으며 2021년에는 7%가 하락했다.

화웨이의 단말기 사업과 통신 사업은 회사 매출의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버팀목 사업의 하락으로 2021년 전체 매출은 최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은 2020년 8914억 위안(약 175조)에서 2021년 6368억 위안(124조)으로 29%가량 감소했으며, 2017년의 매출 규모 수준을 보였다.

지난 10년간 화웨이의 전체 매출 추이. [그래프 ICT解讀者]

지난 10년간 화웨이의 전체 매출 추이. [그래프 ICT解讀者]

화웨이가 공급망 위기에 대응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3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또 다른 통신 장비업체인 ZTE(중싱통신·中興通訊)에 장비·부품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영국 보안당국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ZTE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화웨이는 “극한의 생존”을 가정하고 자급자족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갖췄다.

 
화웨이는 GMS를 극복하기 위해 HMS 서비스 생태계를 론칭하고 글로벌 개발자들에게 전면 개방했지만, 미국의 금지로 인해 공개 시장에서 여전히 5G 칩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4G 휴대전화 시장 공간은 더 좁아지고 있다. 중국정보통신기술원에 따르면 올해 1~6월 중국 4G 휴대전화 출하량은 2607만 대로 전년 동기대비 42% 감소했다. 5G 스마트폰 출하량 비중은 80%를 넘어섰다. 그러나 기술이 없는 화웨이는 4G 스마트폰만 생산·판매 중이다. 오는 6일 출시될 최신 모델 Mate 50 역시 5G를 지원하지 않는다. 향후 화웨이가 5G 휴대전화의 칩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2025년 휴대전화 시장에서 화웨이의 모습을 아예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화웨이의 사업량은 막대해졌고 제품 라인업은 확장됐다. 런정페이는 모든 공급량을 자국산으로 대체하기엔 비교적 길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보았다. 이에 내부 연설에서 향후 2년간을 숨을 고르는 해로 정의하며 2025년까지 공급망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업계는 2025년까지 시장이 화웨이를 기다려줄지가 의문이라고 입 모은다. 

화웨이의 위기, 그 두 번째는 시장의 압박이다.

화웨이는 ICT 인프라 및 스마트 단말기의 세계적인 공급업체다. 전 세계 17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 화웨이의 손길이 뻗쳐있다. 2012년 화웨이의 해외 시장 매출은 중국 시장의 약 두 배인 1466억 위안(약 28조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 리스트에 포함했던 2019년 이후 자국과 해외 시장의 격차는 확연히 벌어졌다. 화웨이의 해외시장 매출은 해마다 감소했고 전체 수익에서 해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35% 이하로 감소했다. 특히 단말기 부문에서 화웨이 스마트폰이 구글 모바일서비스(GMS)를 지원받지 못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화웨이의 중국/해외 매출 비교 그래프. [그래프 ICT解讀者]

화웨이의 중국/해외 매출 비교 그래프. [그래프 ICT解讀者]

화웨이의 현재 해외 사업 수익은 주로 통신 사업 부문에서 나온다. 화웨이는 주력시장이었던 유럽 역시 경쟁업체로부터 잠식당했다. 이들의 5G 장비 판매는 주로 중동,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시장의 5G에 대한 열정과 투자는 유럽과 미국, 일본, 한국, 특히 시장 규모가 큰 말레이시아와 인도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해외 시장에서 화웨이의 수입 성장 공간은 더욱 축소되고 있다.

 
화웨이의 본거지인 중국 시장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중국 공신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중국 내 5G 기지국은 약 197만 개로, 모든 지급시(地級市) 도시 지역과 현(縣)급 지역 및 96%의 향진(鄉鎮) 지역에 5G 네트워크가 보급되고 있다. 중국 5G 네트워크 대규모 건설이 거의 마무리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중국 통신사 시장이 변곡점을 맞았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차이나텔레콤(中國電信)은 5G 관련 투자를 전년 대비 10.5%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역시 5G 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3.5% 하락했으며 매년 투자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5G 투자의 무게중심이 중국에서 해외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화웨이에 매우 악재다. 5G 네트워크 구축이 시작된 2019년부터 2021년 말까지 5G에 대한 중국 3대 통신사의 고정자본 지출은 약 4015억 위안(약 80조 원)에 달했으며, 화웨이는 그중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해 큰 수혜를 입었다. 그간 해외 사업 수익의 큰 타격을 통신 사업으로 회복해 전체 사업 매출이 3%와 0.2%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화웨이의 지난 10년간 사업 수익이 2천억~3천억 위안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투자의 전체 규모와 설비업체의 경쟁 구도가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국 시장의 5G 투자 감소와 해외 시장 5G 제한에 따라 화웨이의 통신 장비 매출은 오는 2023년부터 2000억 위안까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화웨이 통신 산업 매출 규모 추이. [그래프 ICT解讀者]

화웨이 통신 산업 매출 규모 추이. [그래프 ICT解讀者]

런정페이의 세 번째 위험신호, 바로 재무 리스크다.

화웨이는 지난 3월 열린 연례보고회의에서 “재무건전, 기대치에 부합한 결과”라는 문장으로 경영실적을 정리했다. 실제로 지난해 화웨이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29% 줄어들었지만 순이익이 사상 최고치인 1137억 위안(약 21조 77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5.9% 증가했다. 경영 현금흐름은 전년 대비 69.4% 증가해 597억 위안(약 11조 7천억 원)을 기록했다. 당시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규모는 축소했지만 수익성과 현금흐름 확보 능력은 모두 향상되고 있다”며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회사의 능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순이익 측면에서 보면 화웨이의 수익 능력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손익계산서를 보면 이는 중국 통신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자회사 매각 덕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매출총이익률 중 56%가 5G 사업분야에서 나왔다. 또 데이터센터용 하드웨어 기업 엑스퓨전(xFusion)과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Honor)의 매각으로 617억 위안의 일회성 수익을 얻었다. 해당 사업 자산 매각 수익을 제외하면 화웨이의 지난해 순이익은 520억 위안(약 10조 원)으로, 2020년 646억 위안보다 적어진다.  

화웨이 재무보고서 중 일부. [사진 화웨이]

화웨이 재무보고서 중 일부. [사진 화웨이]

게다가 화웨이의 연구개발(R&D) 비용과 기간비용(판매 수입에서 판매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해가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지출한 기간비용은 2468억 위안(약 48조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0.2%p 높아졌다. 연구개발 비용 역시 전년대비 6.5%p 상승한 22.4%(1427억 위안, 약 27조 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화웨이 사상 최고치다.  

 
전체 매출이 급감했음에도 화웨이는 오히려 2천 명 이상의 인력을 충원해 지난해 연구개발에만 10만 7천 명을 고용했다. 화웨이는 이에 대해 “클라우드, 인공 지능, 스마트 자동차 부품, 소프트웨어 루트 기술과 같은 미래 지향적 연구혁신과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에 지속해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래지향적 연구혁신’이 새로운 사업 수익으로 전환되기 전에 화웨이가 고려해야 할 것은 공급망 위기와 시장 압박이다. 전문가들은 매출 규모가 지속해서 축소될 것을 고려하면 화웨이 전체 현금 흐름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런정페이 회장 역시 재무적 리스크를 의식한 듯 이번 연설에서 “재무는 현금 흐름을 위해 잘 계획되어야 하며 위기가 봉착하면 때로는 수혈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2022년 들어 화웨이의 현금흐름 압박은 더욱 커졌고, 올 1월부터 8월 초까지 7개월간 중국 채권시장에서 7차례에 걸쳐 자금을 조달해 2021년의 3배에 달하는 240억 위안의 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화웨이의 자금 수혈에 대한 갈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PA=연합뉴스]

[EPA=연합뉴스]

공급망 위기부터 시장 압박, 재정적 위험까지…런정페이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통신사들의 5G 투자 피크도 지났다. 단말기 수요의 하락으로 화웨이 매출 규모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연설문에서 ‘축소’와 ‘수축’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 “화웨이는 미래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낮추고 ‘품질’로 살아남아야 한다”며 판매 수익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며 현금 흐름과 실제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이 전례 없는 한파에 어떻게 맞서게 될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차이나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