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연합뉴스
‘건반 위의 구도자’란 별명처럼 거의 매년 작곡가를 선정해 삶과 음악을 집중 탐구해온 백건우.
2019년 쇼팽, 2020년 슈만에 이어 이번 선택지는 엔리케 그라나도스다. 백건우가 19일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음반을 발매하고 이와 동일한 프로그램의 리사이틀 투어에 나선다. 다음 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비롯해 이달 23일 울산, 24일 부평, 27일 제주, 다음 달 1일 마포, 6일 경기 광주, 19일 강릉에서 음악 팬들과 만난다.
피아니스트들의 레퍼토리는 유럽 작곡가들이 큰 축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바흐・모차르트・ 베토벤・슈베르트・슈만・브람스 등 독일, 라흐마니노프・스크랴빈 등 러시아, 쇼팽・포레・라벨 등 프랑스가 중심이다. 파야・알베니스・그라나도스 등 스페인 작곡가들은 국내 공연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는 백건우가 반세기 넘게 기다려온 작품이다.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백건우는 뉴욕에 머물던 시절 알리시아 데 라로차가 연주하는 ‘고예스카스’를 들었다. 그라나도스 제자의 제자로 스페인 거장 피아니스트다.
“카네기홀이었어요. 초겨울 쯤이었나 추운 날씨였지만 데 라로차의 연주를 듣는 동안 햇볕이 든 것처럼 따뜻했죠. 그때 음악을 통해 다른 세상에 다녀올 수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언젠가 이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숙제로 갖고 있었어요, 그게 40년이 넘었네요.”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음반을 발매한 백건우. 매년 작곡가를 선정해 삶과 음악을 집중 탐구해온 그가 스페인 작곡가를 다루는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그라나도스는 고야의 그림들을 사랑했다. 고야의 색채, 심리적인 분위기에 깊이 매료돼 음악으로 남겼다. 백건우는 올해 독일의 음악축제와 스페인 미술관에서 ‘고예스카스’를 연주했다.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미술관에서 공연하며 그곳에 소장중인 고야의 작품들도 돌아볼 수 있었다. 백건우는 “고야가 30년간 미술을 가르쳤던 곳에서 연주하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고 했다.
백건우는 ‘고예스카스’가 본인에게 자유를 의미하는 작품이라 말했다. “세계 음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충실하고 훌륭한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이제는 음악을 좀 더 즐기고 싶어요. 음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도 조금은 음악에 후해지고 음악도 저를 받아주는 느낌입니다.”
하드 커버로 된 음반 재킷에는 백건우의 친필과 뉴욕에서 찍은 꽃 사진이 담겼다. 내지에는 직접 여행하며 찍은 스페인의 사진들이 실렸다. 그중 2장은 엽서처럼 제공된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