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간 회사 3400개 증발, ‘내우외환’ 빠진 中 반도체

중국 반도체 업계가 심상치 않다. 14일 현지 매체 타이메이티(鈦媒體)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중국 반도체 회사 3470곳이 등록 말소됐다.

지난 5년간 중국에서 등록 말소된 반도체 회사는 461곳(2017년), 715곳(2018년), 1294곳(2019년), 1397곳(2020년), 3420곳(2021년)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을 접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올해는 8개월 만에 사업을 포기한 회사 수가 전년도 기록을 초과해, 중국 반도체 업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렸다. 

반도체 회사 10개 중 7개 나이 3살도 안 돼… 거듭되는 악재에 버틸 힘 부족  

2016-2022 상반기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 등록 수 (단위:만) [사진 중상정보망]

2016-2022 상반기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 등록 수 (단위:만) [사진 중상정보망]

중국의 반도체 관련 회사 수는 지난 3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기업정보플랫폼 치차차(企查查)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중국의 반도체 회사 수는 14만 2900여 개로, 이 중 70%가 2020년부터 2022년 상반기 사이에 새로 생겨났다.  

그러나 코로나 19 재확산, 소비 수요 악화, 미국발 제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중국 내 신생 반도체 회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업계를 떠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올해 7월과 8월에 연이어 문을 닫은 눠링커지(諾領科技)와 치링신(啓靈芯∙QUILLION)이 있다.  


비어있는 눠링커지 사무실 [사진 신랑차이징]

비어있는 눠링커지 사무실 [사진 신랑차이징]

눠링커지(諾領科技)는 중국의 퀄컴이 되겠다고 자신했던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회사다. 2년 전 성장성을 인정받아 2억 위안(약 39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으나, 올해 7월 갑작스레 부도 소식을 전하며 중국 반도체 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눠링커지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신생 중앙처리장치(CPU) 개발업체 치링신(啓靈芯∙QUILLION) 역시 사업 중단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치신링은 고성능 CPU 기술과 풍부한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단숨에 중국 반도체 굴기의 차세대 주력군으로 떠올랐다. 

치신링은 설립된 지 반년만인 올해 5월 6억 위안(약 1188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으며, 6월에는 40여 개의 신규 채용 공고를 내며 반도체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에 사업을 중단하고 사무실 문을 굳게 닫은 모습이 포착돼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내우외환' 빠진 中 반도체 및 집적회로 산업

타이메이티는 중국의 반도체 및 집적회로(IC) 산업이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태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내우(內憂): 중국 전체 투자금융 시장의 침체, 소비자용 칩의 약세
최근 2년간 뜨거웠던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투자 열기가 한풀 꺾일 조짐을 보인다.

지난 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이 발간한 '2022년 상반기 중화권 벤처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화권 시장에 대한 벤처캐피털(VC) 투자 규모는 286억 달러(약 39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감소했다.  

2015-2022 중국 시장에 대한 VC투자 [사진 피치북/타이메이티]

2015-2022 중국 시장에 대한 VC투자 [사진 피치북/타이메이티]

중국 시장에 대한 VC 투자가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에 대한 투자 역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지난해 미국 VC는 중국 반도체 분야에 28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 규모의 뭉칫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바이든 정부가 중국 기술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줄을 죄면서 2022년 상반기(6월 17일 기준) 미국 VC의 중국 반도체 투자는 8억 달러(약 1조 원)에 그쳤다.

한편, 지난해 중국에서는 공급난으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반도체 신규 발행 시장의 투자 열기가 고조됐다. 유통시장 역시 반도체 테마주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호조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2021년 말부터 소비 심리 악화 등으로 중국 기업의 반도체 재고가 늘었고, 이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중국 내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의 판매량 감소는 RF 칩과 블루투스 칩 설계 기업이 대거 포진해 있는 소비용 반도체 분야에 특히 더 치명타를 입혔다.

반도체 가격 하락의 여파는 자본시장으로까지 번졌다. 장위(張聿) 월든 인터내셔널 매니징 파트너는 "지난 2년간 중국 반도체 업계에 불었던 투자 열풍과 대조적으로 현재는 반도체 신규 발행 시장의 투융자 속도가 둔화하고 있으며, 기업의 시가총액 역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IT 전문 매체 아이지웨이(愛集微)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중국의 반도체 핵심 테마주 140여 개 가운데 시가총액이 증가한 종목은 5개에 불과했다. 140여 개 종목의 시가총액 하락 폭은 평균 35%로 집계됐으며, 최대 하락 폭은 65%에 달했다.

외환(外患): 미·중간 칩 디커플링, 반도체 제조 장비 대중국 수출 제한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끊임없는 제재가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 상무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AMD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국에 허가 없이 수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해당 반도체가 중국에서 군사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GPU는 인공지능(AI)과 슈퍼 컴퓨팅 등에 쓰이는 반도체로, 엔비디아와 AMD의 중국 내 GPU 시장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로 세계 최고로 평가받아온 중국의 AI 경쟁력이 크게 타격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중국공정원 원사 왕은둥(王恩東)은 기술적·생태적 요인 때문에 국산 GPU가 엔비디아와 AMD의 시장 공백을 메꾸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타이메이티는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의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 최근 중국이 박차를 가하는 데이터 센터 배치와 딥러닝 연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기술 제재는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와 범위가 커지고 있다. 당분간 중국 반도체 업계에 드리운 내우외환은 지속할 모양새다.

차이나랩 권가영 에디터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