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의 낯선 나라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을 잡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민간 사업가 강인구(하정우)가 투입되는 이야기를 그린 '수리남'의 촬영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두 달 촬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주도·전주·안성 등 국내에서 이뤄졌다. 사진 넷플릭스
야자수가 우거진 열대우림부터 남미의 태양 아래 빛나는 바닷가와 유럽풍 대저택, 다양한 인종과 색채가 어지럽게 뒤섞인 차이나타운까지. 지난 9일 공개 후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연기뿐 아니라, 이국적인 남미의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상미로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작 이를 완성한 김병한 미술감독은 프로덕션에 돌입하기 전까지 “수리남은 물론, 다른 남미 국가도 가본 적 없었다”고 말했다. 25일 전화로 만난 김 감독은 “가보지 않은 곳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고 ‘수리남’ 작업을 돌아봤다.
“실제 수리남은 평범…강렬한 라틴 색채 섞어”
해외 촬영이 여의치 않은 상황은 오히려 남미보다 더 ‘남미스러운’ 비주얼을 완성하는 데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김 감독은 “수리남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다인종이 섞여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지만, 건축 양식과 풍경이 생각보다 평범해서 영상에 그대로 담기에는 아쉬웠다”며 “멕시코나 쿠바처럼 강렬한 라틴 느낌의 색채를 차용해 실재하지 않는 느낌을 ‘퓨전식’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에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차이나타운은 전주 오픈 세트장에 150일 걸려 지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수리남' 프로덕션 스틸. 사진 넷플릭스
차이나타운은 200m에 달하는 거리 전체를 150일에 걸쳐 전주의 오픈 세트장에 지은 경우였다. 김 감독은 “차이나타운은 방콕 등에 가서 찍는 것도 고려했는데, 이곳들의 비주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평범했다”며 “좀 더 영화적이고, 70~80년대 차이나타운 느낌을 살리는 동시에 통제 가능한 세트장을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비 오면 물새는 야외 세트…“‘기생충’ 미술감독에게 전화”

넷플릭스 '수리남' 속 전요환(황정민)의 서재 세트장. 사진 넷플릭스

전요환의 저택 공간 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야외 수영장 역시 전주 오픈 세트장에 지었다. 김병한 미술감독은 "외부 장면을 실내 세트에 지으면 아무리 조명을 잘 써도 가짜 티가 날 수밖에 없다"며 "실제 태양을 받을 수 있는 전주 부지에다가 땅을 다져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차이나타운과 전요환 저택이 제일 공을 들인 세트였는데, 둘 다 오픈 세트라서 비가 오면 작업을 못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세트 위에 샌드위치 패널이나 철제로 간이 지붕을 만들긴 했지만, 비가 새더라고요. 전주 세트장 부지가 영화 ‘기생충’ 저택 세트가 있던 곳이어서 이하준 미술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지붕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웃음)
교도소 벽도 페인트칠…“재소자들 통제 안돼 작업 방해하기도”

브라질 국경의 밀림에서 마약 거래를 시도하는 장면은 제주도 야자수 농장에서 촬영했다. 김병한 미술감독은 ″3개월 전부터 조경 계획을 세워 키 작은 야자수나 잡초 등을 미리 심어서 길렀고, 그래도 빈 부분은 실제 넝쿨과 조화를 섞어 나무에 걸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교도소에서 이뤄진 촬영 때도 벽에 적힌 스페인어 글자를 수리남에서 사용하는 네덜란드어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해야 했다. 김 감독은 “재소자들이 철저히 통제가 안 돼서 자꾸 옆에 와서 ‘사진 찍자’고 하거나, 비속어를 쓰는 등 작업을 방해하는 통에 일하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 밖에도 벽에 네덜란드 슬랭으로 낙서를 하고, 국산 트럭을 남미 차처럼 보이도록 칠하는 작업 등 미술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김 감독은 “감독님과 배우들이 현장에 오자마자 우리가 준비한 것들에 놀라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1차 목표였다”며 “그래서 작은 소품에서도 디테일을 최대한 잡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