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올려쓰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한·미 통화스와프와 관련한 질의에 “통화 스와프에는 전제조건들이 있고, 전제조건이 맞았을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누구 봐도 전제조건이 맞지 않은데 마치 지금 한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스와프를 달라고 하면 오히려 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국민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받아오면 좋은 것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22원 하락(환율 상승)한 달러당 1431.3원에 거래를 마쳤다.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6일(종가 기준 달러당 1440원)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앞서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이 통화스와프를 포함한 유동성 공급 장치를 실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의 원화가치 급락에 대해 과도한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나라와 공통으로 절하된 부분과 추가로 절하된 부분을 구별해서 논의하지 않으면 과도하게 위기를 걱정할 수 있다”며 “9월 이후 엔화와 위안화가 절하되며 원화가 한국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비해 더 급격하게 절하되는 점이 있어 쏠림현상이 없도록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총재는 "과거에는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국가 부채가 커져 기업과 은행이 넘어갈 상황이지만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1997년과 2008년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이번에 미국과 통화스와프 없이 위기를 해결한다면 여러 가지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보험(스와프)을 갖고 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그 일이 제대로 되면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과 한은과의 통화스와프나 해외 투자자산의 국내 환수 등을 방안으로 꼽았다. 다만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 등 각종 대책은 약발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강달러를 불러온 Fed의 긴축이 계속되고, 통화스와프 등 외부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환안정대책의 약발마저 먹히지 않을 경우 상당 기간 고환율의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 총재도 이날 “국민들이 에너지수요를 줄이느냐 역시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며 “모든 경제주체가 여러 방법을 통해서 위기를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9/26/0b45190d-bfb9-474d-9d9d-c7db866a7cc3.jpg)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 총재는 지난 22일 비상거시경제회의 때 “미국의 기준금리가 4%대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한 달 사이 많이 바뀌었다”며 "다음 금통위 때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금리 경로 전망)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의 종전 포워드 가이던스는 점진적인 0.25%포인트 인상이었다.
추가 빅스텝 가능성이 커지며 채권 금리는 급등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6일 국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349%포인트 오른 연 4.548%에 거래를 마쳤다. 국채 3년물 금리가 4.5%를 넘어선 건 2009년 10월 28일(4.51%)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과 너무 큰 금리 격차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반드시 1대 1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가 상황과 가계부채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만큼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취지다. 과거 한미 금리 역전 기간 중 최대 역전 폭은 1.5%포인트(2000년 5월)였다.
이 총재는 향후 물가 상황에 대해서는 “물가 정점을 10월 정도로 보고 있는데 예상보다 국제 유가는 빨리 떨어지고 있지만, 환율 절하로 그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며 “저희가 걱정하는 것은 물가가 내려오는 속도가 (원화 절하로) 굉장히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