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친듯 '러 합병 찬성' 90%…우크라 "투표, 총부리로 위협"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4곳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을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27일(현지시간) 예상대로 90% 넘는 압도적 찬성률로 가결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강제한 주민투표를 "코미디"라고 비난했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번 투표 결과를 규탄하고 부인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수장인 데니스 푸실린(앞줄 왼쪽)이 27일 투표 잠정집계결과를 들으며 안드레이 투르차크 통합러시아당 사무총장과 서로 얼싸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수장인 데니스 푸실린(앞줄 왼쪽)이 27일 투표 잠정집계결과를 들으며 안드레이 투르차크 통합러시아당 사무총장과 서로 얼싸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남부 자포리자주(州)·헤르손주 등 4곳에서 진행된 주민투표가 이날 일제히 종료됐다. 러시아 영토로 병합하는 것에 찬성하는지 묻는 이번 주민투표는 지난 23일부터 닷새간 이어졌다. 4개 지역의 투표율은 93.11%로 알려졌다. 

잠정 집계 결과, DPR에서는 99% 주민이 러시아 영토에 병합되는 것을 찬성했다. LPR 98%, 자포리자 93%, 헤르손 87% 순으로 러시아 편입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의 면적은 9만㎢로,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에 달한다. 최종 집계 결과는 닷새 내 발표된다.

 
서방은 러시아가 영토 편입안이 최종 가결되면 곧바로 후속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국방부는 "오는 30일 러시아 의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상·하원 연설이 예정돼 있다"며 "이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러시아 연방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신속한 절차 진행을 위해 러시아 연방하원(두마)이 28일 병합 법안을 발의·의결한 뒤, 29일 상원이 승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은 다음달 4일께 합병 비준 가능성도 내비쳤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정식으로 자국령으로 선언하면,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움직임을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해 소탕전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 일간지 베도모스티는 의회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실제 합병할 경우 앞서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와 합쳐 새로운 연방관구(크림 연방관구)를 구성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투표 결과를 비난하며 자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텔레그램 영상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투표 결과를 비난하며 자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텔레그램 영상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을 통해 “우리는 이들 지역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세계인의 눈앞에서 러시아가 ‘주민투표’라고 불리는 웃음거리를 연출했다”며 “주민들은 기관총 위협을 받으며 억지로 투표용지를 작성했다”면서 투표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투표의 불법성과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하기로 했다. 결의안에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에 병합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과 러시아군에 대한 즉각적인 철군 요구도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당사국인 러시아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 해당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번 주민투표는 시작부터 논란거리였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러시아군 점령지의 각 가정마다 방문하며 투표를 강요했고 비밀투표 원칙도 무시됐다. 투표 첫 나흘 간은 선관위 직원이 주민들을 찾아가 투표 용지를 수거했고, 마지막 날에만 주민들이 투표소로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많은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총구를 겨눈 채 투표가 실시됐다”고 보도했다. LPR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투표소에선 신분증 대신 이름과 주소만 요구했다"면서 “투표결과가 조작되기 쉽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WP에 전했다. 

27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치러진 합병안 투표용지를 집계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치러진 합병안 투표용지를 집계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AFP=연합뉴스

 
한편, 미국은 러시아의 주민투표가 종료되자 즉각 우크라이나에 11억 달러(약 1조 5700억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예고했다. 이번 지원에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발사대 시스템, 군수품, 레이더 시스템, 훈련·기술 지원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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