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인류 재앙" 폭탄테러범 된 수학천재…종신형 중 사망

현대 문명과 과학 기술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혐오주의자였던 미국의 수학자 출신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 81세로 수감 중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81세 카진스키, 수감 중 극단 선택 추정 

 

지난 1996년 4월 미국 연방수사국(FBI)가 공개한 우편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1996년 4월 미국 연방수사국(FBI)가 공개한 우편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의 모습.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카진스키는 10일 오전 0시 30분께(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연방 교도소 의료센터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주 검시관실은 카진스키를 부검할 예정이나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NYT는 카진스키 사망 상황을 잘 아는 소식통 3명을 인용해 그가 극단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ABC방송도 관계 당국이 카진스키 사망을 자살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아직 자살 경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카진스키는 지난 1998년 1월 우편 폭탄 테러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속옷으로 목을 매 자살 시도를 한 바 있다. 이듬해 타임지와 인터뷰에선 “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느니 사형을 택하겠다”고 했다.


우편 폭탄 테러범이 된 수학 천재 

우편폭탄 테러범인 테드 카진스키(가운데)가 지난 1996년 4월 4일 미 몬태나주 헬레나시에 있는 법원에서 나와 차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편폭탄 테러범인 테드 카진스키(가운데)가 지난 1996년 4월 4일 미 몬태나주 헬레나시에 있는 법원에서 나와 차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간 16차례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 폭탄을 보내 컴퓨터 상점 주인, 삼림 개발업계 홍보를 맡은 홍보회사 임원, 목재 산업 로비스트 등 3명을 숨지게 했다. 또 유나이티드 항공사 사장, 전기공학 교수, 컴퓨터 과학 교수 등 23명을 다치게 했다. 이로 인해 당시 미국에선 우편물 수령과 비행기 탑승에 대한 공포가 일었다.  

카진스키의 범행 대상이 주로 대학과 항공사였기 때문에 그는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 단어의 앞글자 ‘Un’과 ‘A’, 그리고 폭탄제조자(Bomber)를 묶어 ‘유나바머(Unabomber)’란 별명으로 불렸다. 

카진스키는 폭탄에 지문 등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에 미 연방수사국(FBI)은 17년간 최소 150명 이상의 수사관을 투입해 수사를 벌였다. 당시 FBI는 단일 사건으론 역대 최고액인 5000만 달러(약 647억원)를 수사 비용으로 썼다.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진스키는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한 신동이었다.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수학 천재로, 24세 때인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2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뒀다.  

이후 1971년부터는 몬태나주 오두막에서 전기와 수도도 없이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오두막 인근에 도로 등이 생기며 개발되는 모습을 보고 생태계 파괴와 과학·산업 기술 전반에 대해 분노하게 됐고,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우편 테러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산업혁명은 재앙" 선언문에 덜미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그의 범행은 친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의 신고로 끝이 났다. 데이비드는 1995년 9월 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유력 신문에 실린 일명 ‘유나바머 선언문’을 보고 형의 문체란 사실을 알아챘다. 당시 카진스키는 3만5000단어 분량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NYT와 WP 등에 실어주면 범행을 멈추겠다고 했다. 

테드 카진스키가 지난 1995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지에 보낸 3만5000단어 분량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 사진 트위터 캡처

테드 카진스키가 지난 1995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지에 보낸 3만5000단어 분량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 사진 트위터 캡처

그는 이 선언문에서 반(反)과학·반기술을 옹호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산업혁명은 기대수명을 크게 늘렸지만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인간에게 광범위한 심리적 고통을 초래시켜 인류에겐 재앙”이라면서 “현 사회의 경제와 기술의 토대를 제거해 산업사회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동생의 신고로 1996년 4월 체포된 카진스키는 1998년 유죄를 인정해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고강도 보안으로 유명한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2021년 건강상의 문제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교도소 의료센터로 이송됐다.  

지난 1996년 4월에 공개된 테드 카진스키가 살던 몬태나주의 오두막. 카진스키는 이곳에서 전기와 수도도 없이 은둔생황을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996년 4월에 공개된 테드 카진스키가 살던 몬태나주의 오두막. 카진스키는 이곳에서 전기와 수도도 없이 은둔생황을 했다. AP=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카진스키의 가족과 변호인은 감형을 위해 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카진스키 본인은 “미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난 1998년 그의 정신 감정을 맡았던 정신과 전문의 샐리 존슨 박사는 그가 편집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으나 재판을 받을 만한 정신적 능력을 갖췄다는 진단을 내렸다.  

유나바머 선언문과 그의 스토리 등은 영화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테러 피해자와 유족들은 카진스키를 ‘악마’라고 비난했지만, 일각에선 기술 발달로 인한 사회 불평등 심화와 기후변화 등을 내다본 그를 ‘예언자’로 추앙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