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만난 재한 태국인 라디꿀 블루앙(41)은 최근 K리그 울산현대 축구단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논란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블루앙은 “한국인에게 뭘 물어보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며 “가까이 다가와 ‘피부색이 이게 뭐냐’고 하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태국인 A씨(33)도 “외국인 직원과 겸상하지 않는 한국인도 겪었다. 이번 사건이 특별히 놀랍진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 중인 태국인 라디꿀 블루앙(41·왼쪽)과 A씨(33)가 13일 서울 한남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이들이 언급한 사건은 지난 11일 벌어졌다. 울산현대 축구단의 주장단과 팀 매니저가 이명재 선수의 경기력을 칭찬하는 과정에서 SNS에 “동남아시아 쿼터 든든하다” “사살락 폼 미쳤다” 등의 인종 차별성 댓글을 달아 논란이 됐다. 2021년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태국 국가대표 출신 사살락 하이쁘라콘 선수의 실명을 언급하며 까만 피부를 동남아인에 비유한 것이다. 구단은 이튿날(12일) “선수단의 부적절한 언행에 사과드린다. 재발 방지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K리그 울산 현대 축구단의 이규성·박용우 선수와 팀 매니저가 지난 11일 같은 팀 이명재 선수를 동남아시아인에 빗대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오른쪽은 지난 12일 울산 현대 축구단이 올린 공식 사과문.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엔 대구 대현동에서 무슬림 유학생들의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돼지 머리를 놔두거나 통돼지 바베큐 파티를 벌여 논란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한 소수자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표현”이라는 위원장 성명을 냈다. 지난해 한국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에서 외국인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34%(온라인), 25.3%(오프라인)였다.

지난 9일 해외 SNS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뉴진스 하니가 SNS에 올린 할리 베일리와의 셀카에 국내 누리꾼들이 단 인종차별 악플이 번역되며 논란이 일었다. 사진 트위터 캡처
국회에서도 최근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정부가 추진 중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알선 제도와 관련,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을 3월 발의했다가 인종차별이란 비난이 일자 공동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이 철회 의사를 밝히며 법안이 자동으로 철회된 일이 있었다. 20년간 외국인 인권 업무를 맡아온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정부가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노동력 부족과 저출산 해결 등으로 수단화 돼있다”며 “인종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한 장기적 관점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2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37%다. 10년 전보다 80만명이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문화적 다양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 시민교육이나 사회적 논의는 공회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인권학회 이사)는 “다양성에 대한 경험 부족이 원인”이라며 “실생활에서 외국인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역지사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경미 인권교육온다 활동가는 “스포츠·문화 계열은 물론 모든 교육 현장에서 인권교육 자체가 후순위”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이 혐오·차별인지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교육의 확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