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6/27/16722567-06a5-46eb-93f1-3fc361257727.jpg)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요즘 난제 하나가 더해질 조짐이다. 영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는 8.7%에 달했다. 물가 압력이 낮아지고 있는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과는 딴판이다.
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료품, 술, 담배를 제외하고 만든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 해 전 같은 달과 견줘 7.1%나 됐다. 무엇보다 직전인 올해 4월 6.8%보다 더 높아졌다. 영국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간명했다. “항공과 레저, 문화 상품, 중고차 가격(비용)이 5월 물가지수에 가장 큰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영국 통계청이 브리핑했다.
5월 CPI 8.7% 상승, 전망 초과
물가 안정세 미·일·EU와 차이
원인 놓고 분분, 갈등 양상까지
‘물가의 정치화’ 현상 재연 조짐
물가 안정세 미·일·EU와 차이
원인 놓고 분분, 갈등 양상까지
‘물가의 정치화’ 현상 재연 조짐
재발하는 영국의 고질병
![영국의 올해 5월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7% 뛰었다. 반면,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의 물가압력은 낮아지고 있다. 사진은 런던 중심지의 노점 과일상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6/27/e92a10d2-903a-45fb-b71d-fa52081b243b.jpg)
영국의 올해 5월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7% 뛰었다. 반면,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의 물가압력은 낮아지고 있다. 사진은 런던 중심지의 노점 과일상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 가운데 관심을 끈 것은 프랑스 인시아드대 안토니오 파타스 교수(경제학)의 코멘트였다. 그는 서방 미디어와 인터뷰 그리고 기자와 통화에서 “영국의 고질병이 시차를 두고 재발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고질병은 영국이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 병리 현상을 유달리 심하게 앓는 패턴을 두고 한 말이다.
사실 우리의 눈에 고물가·저성장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미국적인 현상으로 비친다. 하지만 영국 금융역사가인 글린 데이비스는 『돈의 역사(A History of Money)』에서 “미국의 물가가 뛸 때 영국은 치솟았다”고 평할 정도였다. 실제 인플레이션이 서방을 강타한 1973년 1차 오일쇼크 직후 미 물가 상승률은 최고치가 12% 정도였다. 반면에 영국 물가 상승률은 24% 수준까지 치솟았다. 여기에다 통화정책 오류까지 겹쳐 영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영란은행(BOE)이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공급량을 줄였다. 주로 시중은행의 대출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돈은 그 시절 은행 취급도 받지 못했던 주택조합(빌딩소사이어티)을 통해 뭉칫돈이 공급됐다. 그 바람에 기업 대출이 줄면서 실물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집값과 물가는 뛰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는 1976년 외환위기(Sterling Crisis)였다.
브렉시트 vs 탐욕
그해 위기의 원인이 밝혀진 것은 10여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영국 사회는 물가 급등의 원흉 찾기를 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에 시달렸다. 재계는 노동조합 때문에 발생한 임금 경직성이 문제라고 했다. 반면에 노동계는 오일쇼크 등 대외 변수를 지목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80년대 “영국병을 고친다”며 노동조합을 압박한 배경이다. 파타스 교수는 “인플레 원인은 따로 있는데, 물가가 정치화하는 바람에 원인 규명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말했다.
비슷한 갈등이 약 40년 만에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BOE가 물가를 잡기 위해 이달 22일 기준금리를 5%까지 0.5%포인트 올렸다. 애초 예상은 0.25% 인상이었다. 하지만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커지자 큰 걸음(빅스텝)을 밟았다. 통화 긴축은 경제적 고통이 커지는 현상이다. 고통을 누가 더 감내해야 하는지를 두고 영국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김경진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6/27/11e98788-6bf6-40ca-8139-f9ed51f0cf64.jpg)
김경진 기자
물가의 정치화
영국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탐욕 인플레이션(Greedflation)’이다. 기업 등 제품·서비스 공급자가 이윤율을 유지 또는 확대하기 위해 판매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애초 이 개념을 제시한 인물은 스위스계 금융그룹인 UBS의 글로벌웰스매니지먼트 폴 도노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다. 그는 최근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윤추구를 탐욕(greed)이란 부정적인 말로 공격하진 않았다”며 “다만,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와중에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살펴보니 공급자의 가격 인상이 발단이 된 이윤발 인플레이션(Profit-led Inflation)이었다”고 주장했다.
영국내 논쟁과 갈등이 어떻게 결말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프랑스 인시아드대 파타스 교수가 말한 ‘물가의 정치화’가 커질 가능성은 뚜렷하다. 인플레발 갈등이 커지면서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업종을 압박하는 현상이다. 최근엔 프랑스에서도 정부가 나서 기업의 판매가격 인하를 압박한다. 물가의 정치화는 먼 영국만의 일이 아닌 듯하다. 최근 한국 정부가 국제 밀가격 하락을 근거로 라면값 인하를 주문했다. 영국의 물가 정치화가 아주 빠르게 한국으로 전염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