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30일 밤 대전 동구 대전역 인근에서 무면허 운전자 A군(16)이 중앙선을 넘는 등 난폭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30일 밤 9시 15분쯤, 승용차 한 대가 대전역 인근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나들며 차선 변경을 했다. 뒤따라오는 순찰차를 피하려고 속도를 높이다가 과속방지턱에 걸리면서 차 뒤편이 약 2초간 붕 뜨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차량의 운전자는 면허가 없는 청소년이었다. 렌트카 반납이 늦는 걸 이상하게 여긴 업체 직원이 GPS(위치 기반 서비스)를 추적해 운전자를 찾아가보니, 예약시 제출된 운전면허증 속 사진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대전중부서는 지난 7일 운전자 A군(16)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18일 밝혔다.
최근 수년 간 미성년자 무면허 운전 사고가 증가하는 가운데 신분증을 도용해 렌트카를 빌려 운전한 경우가 늘고 있다. 온라인이나 애플리케이션 앱 등으로 비대면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보통 핸드폰 문자메시지 등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인증한 명의와 일치하는 신분증을 등록해야 하는데, 타인의 핸드폰 유심을 빼와서 휴대폰에 장착하고 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인식시켜 등록하는 식이다.

지난 18일 접속한 무면허 운전자의 운전면허증 도용을 돕는 텔레그램 채팅방 화면. '전연령 렌트 공지방'에는 "명의자 면허증 사진 등 필요한 것들 다 넘겨준다"는 글이 올라왔다. 오소영 기자
대여자가 지정된 장소에서 비대면으로 차를 받는 ‘카셰어링’ 방식도 악용된다. 지난달 10일 엑스(X·구 트위터)엔 ‘전연령대 가능, 무면허 환영’이라는 문구와 함께 무면허자 대신 차를 대여해주겠다는 텔레그램 채팅방을 홍보하는 글이 올라왔다. 고객이 지정한 장소에서 차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렌트카 업체에서 브로커가 차를 빌린 뒤, 무면허 운전자와 현장에서 만나 차를 양도하는 식이다.
18일 직접 채팅방에 접속해보니 대여 수법을 자세히 안내하는 공지글과 함께 10대 무면허 운전 관련 보도를 비웃는 채팅도 올라왔다. 방장에게 “무면허자도 차를 대여할 수 있냐”고 문의하니 “가능하다. 대면 인증이 없으니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무면허 운전 적발 건수는 2022년 2만 1471건에서 지난해 2만 8742건으로 2년새 23%가 증가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2022년 발생한 무면허 렌터카 관련 사고에서 운전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는 36%에 달했다.

2020년 인천 영종도에서 1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전복돼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비슷한 사고는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대구 중구 남산동 남문시장 가게로 승용차 한 대가 돌진해 3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도 면허가 없는 19세 남성이 지인에게 렌트카를 빌린 경우였다. 지난해 6월엔 무면허 10대 운전자가 지인 운전면허증으로 차를 빌려 서울 광진구에서 남양주시까지 20km 가량을 운전하다가 다른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2020년 3월엔 인천 영종도의 해안도로에서 무면허 10대가 몰던 렌트카가 방파제를 들이받고 전복돼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를 통해 차를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비대면 렌트카 예약·대여시 심사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명의 확인과 함께 차를 대여·반납 과정에서 대면해 신상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온라인 대여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예약자가 탑승할 때 한번 더 문자 인증을 해서 다른 사람이 타지 못하게 막고는 있다”며 “유심을 갈아끼우거나 운전자를 바꾸는 등 적극적으로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엔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다른 렌터카 업체 관계자도 “미성년자들이 렌트카를 이용하는 문제는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사무소에서 대면으로 차를 넘긴다고 해도 빌린 사람이 양도해버리면 대책이 없다”고 했다.
도로교통법상 무면허 운전을 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특수절도·사기 등 다른 혐의가 엮이지 않으면 보호처분 또는 집행유예 수준에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사람을 치지 않는 한 웬만하면 보호처분으로 끝난다”며 “큰 사고로 번질 수도 있는 만큼 예방 교육은 물론 처벌 강화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