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민간요법이나 수면 음악 등으로 수면을 돕는 방식이 과거엔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숙면을 돕기 위한 웨어러블 기기는 물론 매트리스와 베개 같은 침구류도 IT 기술을 활용합니다. 자면서 즐길 수 있는 게임도 등장했고, 커피숍에는 낮잠을 위한 수면 캡슐을 구비한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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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드저니 AI
급성장하는 슬립테크 시장
수면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수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립테크가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시장은 약 3조 원 규모입니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비전게인은 슬립테크 시장이 2022년 16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에서 연평균 22% 성장해 2033년에는 1,070억 달러(약 141조 원)가 될 것으로 전망했고,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2032년 시장 규모가 950억 달러(약 12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슬립테크는 글로벌 IT 박람회 CES에서 2017년 처음 전용관을 만들 정도로 IT 기술과 빠르게 접목돼 혁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슬립테크가 주목을 받으면서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결합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용어까지 탄생했습니다.
슬립테크는 크게 세 개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침대, 매트리스, 베개와 같은 전통적인 수면 관련 침구류 영역, 신체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 영역, 수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영역입니다. 최근에는 수면을 위한 음료수나 먹거리도 포함되면서 식음료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슬립테크는 수면이라는 활동을 중심으로 제품화와 서비스가 가능한 분야가 여러 산업에 걸쳐 있어, 다양한 IT 기술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아직 초기 단계에 가까워 시장을 선점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슬립테크 분야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다양한 플레이어와 기술의 등장
미국의 한 슬립테크 스타트업 '에잇 슬립(Eight Sleep)'도 매트리스에 온도 제어 장치는 물론 각종 생체 인식을 위한 센서가 부착돼 수면 단계 및 환경에 따라 침대의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지능형 수면 시스템이 탑재돼 있습니다. 해당 제품은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훌륭하다고 직접 평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과거 '침대는 과학'이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가 현실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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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마트 매트리스. 사진 에잇슬립
중국 테크 기업 샤오미는 코골이, 호흡 등 신체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AI 분석이 가능한 스마트 베개를 개발했습니다. 수면 상태와 자세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베개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도 있습니다. 수면 안대와 마스크 역시 많은 기업이 개발에 뛰어든 분야입니다. 수면 상황에 따라 뇌파, 체온, 눈동자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숙면을 위한 빛이나 주파수를 발사하는 등 얼굴에 착용하는 형태입니다.
웨어러블 기기는 수면 중 움직임, 자세 및 행동 같은 수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유용합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로 올바른 수면 방법을 제시하거나 수면을 연구하는 의료진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벤처캐피털 삼성벤처투자는 미국 슬립테크 스타트업 '이어러블 뉴로사이언스'에 투자했습니다. 이들이 개발하는 골전도 헤드셋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는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생체 신호를 수집하고 측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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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전도 헤드셋 기기 '브레인밴드'. 사진 이어러블
애플, 삼성 등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제조사 역시 슬립테크를 위한 데이터 분석 기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LG전자는 CES에서 이어폰처럼 착용하면 뇌파를 측정하고 알맞은 주파수를 전달해 수면을 유도하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식음료 분야도 슬립테크에 관심을 보입니다. 글로벌 음료 브랜드인 펩시는 2020년 드리프트웰(Drift well)이라는 이름의 수면 개선 음료를 출시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기능성 식품 제조사와 요구르트 회사가 수면 개선 음료와 수면 개선 캔디 등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품은 수면 개선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반 수면용 식음료가 개발됐다면, 앞으로는 개인 수면 데이터와 건강 상태에 따라 비타민, 음료 등을 맞춤형으로 제조해 섭취할 수 있는 방식이 주목받을 것입니다.
생활 속에 스며드는 슬립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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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타트업이 개발한 수면 캡슐. 사진 네슬레 재팬 수면 카페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유명한 '포켓몬'은 지난 7월 포켓몬 슬립이라는 모바일 앱을 출시했습니다. 수면 엔터테인먼트라고 불리는 새로운 장르에 속하는 수면 관리 앱입니다. 잠들 때 머리맡에 두면 스마트폰이 수면 상태를 기록하고 다양한 형태로 분석해 줍니다. 이와 함께 포켓몬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수집하고 포인트를 얻는 등 게임 요소가 접목돼 있습니다.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들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한 것입니다.
이처럼 슬립테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수면 장애와 부족한 수면 시간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면 장애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유발합니다. 수면 문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근로자의 사망률과 사고 발생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로 평가받는 슬립테크는 수면 패턴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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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탁 비트블루 C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