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8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창 총리를 만나고 있다. 사진 CGTN
조 바이든 미 정부가 지속해서 중국을 타격하면서도, 미국의 주요 장관들이 중국방문이라는 의외의 행보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미국 재무장관 옐런은 “중국 군사력 강화에 사용될 수 있는 특정한 기술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만 추구할 뿐, 무차별 디리스킹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중국은 ‘디리스킹’은 디커플링(decoupling)의 위장이며 어감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오래된 술을 새 병에 담는 것(新甁裝舊酒) 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미국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이듯, 미국에 대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또한 상황에 따라 견제와 통제를 하면서도, 협상을 통한 완화도 추진하는 모순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공급망 (Supply Chain Management) 재편과 위험성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반도체산업과 이차전지 산업에 대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우방국인 한국·일본·대만에 다양한 우대정책으로 투자유치를 통한, 첨단산업의 미국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추진 중인 내재화 분야의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은 중간재적 성격이 강한 품목들이다. 미래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데,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여 중국에 팔지 못하면, 생산품을 소화할 방법이 많지 않다.
중국은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체적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중국은 최고 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력갱생이 가능하다. 중국은 유럽이나 신흥국에 해외직접투자(FDI)로 대(對) 미국 압박을 피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미국과 비슷해지는 지점에 도달하면, 미국의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미래에 미국이 당면할 위기다.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 문제는 없나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다는 것은, 우리 산업의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을 의미하고, 우리의 핵심 산업을 미국에 뺏길 위험이 있는 선택이다. 우리가 미국에 기여하는 것만큼, 미국에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탈(脫)중국 신중해야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경제는 디커플링, 내수 부진, 부동산 그룹의 디폴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아침에 망할 나라는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하는 거대 시장을 가진 나라다.
우리 경제가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 의도적으로 탈(脫)중국을 외치며 중국과의 교역을 줄이는 바람에, 경제가 저(低)성장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우리는 실익 없는 반중(反中) 정서의 확산으로, 적어도 성장률 1% 이상은 깎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한·중·일 안보동맹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에 보조를 맞추더라도, 선제적으로 이념을 앞세워 공개적으로 탈중국을 선언하거나, 중국과의 교역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하수의 전략이다. 중국이 미우면 중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진정한 복수다.
급속한 탈 중국화는 한국 경제에 직접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리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한다. 전(前) 정권 같은 대(對)중국 굴욕적인 자세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탈중국 전략은 치명적이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