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흉악 범죄가 증가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음에도 지난 10년간 1심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인원은 연평균 1.9명에 불과하며, 사형확정자 수도 6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계는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법관에게 부담스러운 형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사형집행이 중단되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의 지위에 있다. 이처럼 사형선고의 건수가 적고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음에도 사형은 형법전에 형벌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국민 다수가 사형폐지를 반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생명권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사형폐지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었으며, 17대 국회 때인 2004년에는 여·야 의원 157명의 서명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대체 입법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형벌을 도입하면 사형폐지에 찬성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3분의 2에 가까웠다. 이와 같이 이무런 대책 없이 사형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의 반대 의견이 높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금의 시점에서 사형을 폐지하고 대체형벌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무부는 사형을 그대로 존치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대법원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사형을 대체하는 경우에만 도입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사형수·무기수 현황 그래픽 이미지. 그래픽=중앙선데이(법무부, 한국갤럽 자료)
사형 선고는 법관에게도 부담
2007년 4월 27일 출범한 양형위원회는 가장 먼저 살인 범죄양형기준을 제정하여 2009년 7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살인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동기에 있어서 특히 비난할 사유가 있는 살인 유형 중에서 가중 사유가 있는 때에 무기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서 무기 이상의 형은 사형을 의미하지만, 현실에서는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법관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사형집행이 중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현행의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형은 연쇄살인, 묻지마 살인 등과 같은 잔혹한 살인범죄에 대응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잔혹하게 생명을 침해하는 살인범죄를 범하고도 개선의 가능성까지도 보이지 않는 범죄자를 사회와 영원히 분리하여 일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적정하고 필요한 형벌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연쇄살인, 묻지마 살인 등과 같이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고 살해 방법이 매우 잔혹한 살인범에 한하여 선고될 수 있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고 있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 “종신형 자체는 현실의 상황에서 헌법에 합치한다고 하면서 다만 종신형의 집행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다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어야 인간 존엄을 해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특별사면의 기회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연방재판소의 판결을 우리나라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을 반대하는 근거로 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의 사면은 한국과 달리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되며, 가석방의 요건 또한 법률에 구체적이고 엄격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사면이 가능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것이 독일에서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해 7월 1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 연합뉴스
가석방 없는 종신형, 위헌 소지 없어
끝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사형이 폐지된다면 피해자 측의 피해 감정의 회복과 정신적·경제적 보상의 이행을 위해서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형의 대체형벌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자는 견해에 대해서도 인권의 본질을 침해하기 때문에 그 도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으나, 허일태 동아대 명예교수의 “어떤 주장이 있어도 사형보다는 절대적 무기형이 근본적으로 더 인간적인 형벌이다. 사형과 무기형은 삶과 죽음의 차이이기 때문이다”는 의견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관련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다른 시각을 ‘중앙일보 소리내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