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현지시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유엔 웹티비 캡처.
닷새 만에 열리고 빈손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지 70년이 지났고 현재 5000개 이상의 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며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미국과 그 추종자의 군사적 움직임을 명확하게 살펴보기 위한 것이며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김성 주유엔북한대사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김 대사는 "미국은 위성을 풍선이나 새총으로 쏘아 올리냐"고 따졌다. 북한의 위성 발사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해 이뤄졌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반박하는 차원이다.
물론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불법으로 핵 개발을 했기 때문에 인공위성 개발 목적에도 예외 없이 탄도 미사일 기술 사용을 금지당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척 하며 국제사회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해 쏘아 올린 우주발사체에 위성 대신 핵탄두를 탑재하면 곧바로 핵무기가 된다.
이에 따라 북한의 1·2차 핵실험 직후 각각 도출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2006년)와 1874호(2009년)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 사용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핵 개발 전력이 없는 여타 국가와 북한의 위성 발사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북한이 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평화적인 우주 개발'의 권리는 핵 개발에 나섰을 때부터 스스로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발사 장면을 바라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위성 '공범' 러시아, 묵인 중국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한국은 이달 말 미국의 반덴버그 기지에서 첫 번째 정찰위성을 쏘아 올리기로 했다"며 북한의 불법 행위를 두둔하기 위해 한국의 정당한 위성 발사 시도까지 문제 삼았다.
이어 그는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보복 조치'로 2018년 9·19 남북 군사 합의를 일부 효력 정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5년간 약 3600회에 걸쳐 9·19 합의를 위반했다는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은 프로파간다였다.
겅솽(耿爽) 주유엔 중국 차석대사도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우려한다면서 이 기회를 틈타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한반도 긴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북·러의 궤변 대열에 동참했다.
이에 황준국 주유엔 한국 대사는 "북한은 안보리 결의 위반을 넘어 이제 조롱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맞받았다. 이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두 개의 상임이사국이 (북한의) 위험한 발사 행위에 대한 규탄을 꺼리고 있다"며 "그 대신 중ㆍ러의 고위 관리가 북한 열병식에 참석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축하했고,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준국 주유엔한국대사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이날 회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두둔하면서 언론 성명 등 가장 낮은 단계의 공동 조치도 도출하지 못한 채 소득 없이 2시간 만에 끝났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소집된 안보리 회의는 2년 넘게 같은 양상이 반복되며 공전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감싸기는 앞서 북한이 2012년과 2016년 지구관측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 3호'와 '광명성 4호'를 쏘아 올렸을 때와도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은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책임이 있다"며 유감과 우려를 표했고 안보리 차원에서 성명을 낼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북한이 지난 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발사 장면을 조선중앙TV가 23일 공개했다. 사진은 영상에 공개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연일 '어디 찍었다' 자랑
28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11시 35분 53초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와 뉴포트 뉴스조선소, 비행장 지역을 촬영한 자료와 27일 오후 11시 36분 25초 백악관, 펜타곤(미 국방성) 등을 촬영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보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21일 위성을 쏘아 올린 이튿날부터 괌, 하와이, 한반도 인근 등을 찍었다고 줄곧 주장하지만, 촬영된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해상도, 관측 가능 범위 등 위성의 성능이 그대로 노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찰위성을 통해 당장 대외에 공개할만한 품질의 사진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외 과시와 내부 선전용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