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부러워한 韓 쓰레기 종량제…왜 일회용품 규제는 깼나 [홍수열이 소리내다]

환경부가 일회용컵 사용 금지와 같은 일회용품 규제 방침을 철회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소상공인들도 수긍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친환경정책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환경부가 일회용컵 사용 금지와 같은 일회용품 규제 방침을 철회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소상공인들도 수긍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친환경정책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1995년부터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는 국내 환경정책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정책이다. 지정된 봉투를 구입한 후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함으로써 쓰레기를 버린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기본 뼈대를 만든 후 재활용품은 공짜로 배출하도록 해서 분리배출을 촉진하도록 유도했다. 쓰레기 관리 시스템의 전면적인 전환이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책의 예술이었다.  

전국 지자체별로 재활용품을 따로 수거할 수 있는 차량과 인력, 수거된 재활용품을 선별할 수 있는 선별 시설, 쓰레기 종량제 봉투 판매망의 구축 및 관리 시스템 등 새로운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쓰레기를 돈을 내고 버리는 새로운 문화에 국민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쓰레기를 공짜로 불법 투기하는 것을 단속해야 했다.   

전국공동행동 구성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에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원안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전국공동행동 구성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에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원안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지금 우리는 이 시스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1995년 쓰레기 종량제를 시작할 당시 환경부 및 지자체 담당자들은 숨이 넘어가는 아득한 공포와 부담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담당자들은 밤잠을 설치고 휴일을 반납하고 직접 쓰레기 수거 손수레를 끌면서 끝끝내 성공시켰다. 그 결과 재활용품 분리배출 체계가 확실하게 정착되는 등 시스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쓰레기 종량제는 지금도 환경부가 전 세계에 자랑하는 가장 성공한 환경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를 통해 한국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재활용률을 달성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생활쓰레기 재활용률은 57%다. 전 세계 평균 재활용률 20%에 비해 약 세배 수준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재활용률 35%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지성들과 함께 쓴 기후 위기 교과서인 『기후 책』에도 한국은 “재정적 유인 제공, 자발적인 시민 참여, 법률 제정 및 시행 체계구축 등”을 통해 성공적인 쓰레기 관리를 하고 있는 국가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의 쓰레기 정책의 성공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담대한 용기와 불굴의 추진력, 국민의 헌신이 결합되어 전 세계 국가들이 따라 하고 싶은 모델을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이해관계자의 손짓에 따라 정책은 갈피를 잃고 엉망이 되고 있다. 최근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에서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국민을 설득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려는 소신과 신념은 보이지 않고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타협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 일회용품 규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종량제 시행만큼 어려울까. 전 세계가 찬탄하는 제도를 성공시킨 환경부의 뚝심과 자부심은 어디로 갔는가. 


2022년 6월 10일 시행되었어야 할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12월 2일 시행으로 6개월 연기되더니 지역마저 제주도와 세종시로 축소되었다. 2025년부터 전국 확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국적으로 의무 시행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자체별로 보증금제 적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말은 사실상 보증금제 시행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법률로 강제하지 않고 지자체 자율로 떠넘기면 어느 지자체가 보증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2022년 11월 24일부터 시행된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금지는 단속을 1년간 유예하더니 최근에는 더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회용 종이컵은 아예 규제 대상에서 빼서 매장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는 단속을 무기한 연장하겠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사용금지이기는 한데 확실하게 단속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꺼리고 있다.   

매장 내 사용 일회용품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불가피하게 사용할 경우에는 종이빨대 등 친환경 재질로 대체하고,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은 보증금으로 규제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나가겠다는 규제의 틀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정책을 보고 다회용컵 대여 및 세척사업이나 종이 빨대 사업에 투자한 사업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환경부 정책의 신뢰도와 일관성이 무너진 것은 앞으로 계속 환경부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환경부는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키우겠다고 하지만 누가 환경부 정책을 믿고 투자를 하겠는가.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회복하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회용품 규제가 대폭 강화된 것은 국내외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난 10년 동안 쓰레기 발생량은 1.5배로 증가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만 한정하면 2배로 늘었다. 쓰레기 발생량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 2018년에는 수도권 지역 중심으로 폐비닐이 수거되지 않는 대란 사태가 발생했고, 이듬해에는 전국에 235개의 쓰레기 산이 생긴 불법투기로 몸살을 앓았다. 이 상태로 가면 주기적으로 한국은 쓰레기 대란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쓰레기 감량을 위한 강력한 정책추진이 불가피하다. 국민적 동의를 얻기 쉬운 일회용품 규제부터 시작해서 페트병 등의 일회용 포장재까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규제가 단계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일회용품 규제를 전 정권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조그마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대계를 그르치는 것이다.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21일 오후 세종시 한 카페에서 열린 음료 업계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일회용품 제도 변화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뉴스1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21일 오후 세종시 한 카페에서 열린 음료 업계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일회용품 제도 변화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뉴스1

전국의 수십만 개의 사업자와 수천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문제도 아니다. 규제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제도의 단계적 정착을 위한 실행상의 미시적 조정을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 영세한 사업장까지 당장 단속해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과도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규제는 시행하되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우선 관리하는 탄력적인 규제집행을 하면 되는 문제인데, 규제 자체를 없앨 필요가 있었을까.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일회용컵 감량 및 재활용을 모두 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기반으로 다회용컵 보증금제, 다회용 배달용기 보증금제, 페트병 보증금제 등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다. 테이크아웃, 배달되는 일회용품을 규제하려면 매장 내 사용되는 일회용품 규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성공시킨다면 쓰레기 종량제에 이어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성공사례가 생길 수 있다. 환경부는 왜 잘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엎어버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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