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 ‘리스크 대시보드(Risk Dashboard)’에서 신용위험 우려 업종으로 건설, 유통, 석유화학, 저축은행을 꼽았다. 여기에 속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 하락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업 입장에선 신용등급이 하락할수록 자금 조달(회사채 발행) 부담이 커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권 전체 PF 대출 잔액(135조6000억원) 가운데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9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출의 질이다. 저축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토지 매입 등 사업장 초기 개발금) 비중이 높고, 시공사 신용도가 낮은 소규모 사업장에 주로 자금을 빌려준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저축은행의 PF대출 연체율은 전 분기(5.6%)보다 1.3%포인트 오른 6.9%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장은 “올해 실적과 재무안전성 악화가 지속돼 다수 저축은행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바로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내렸다.
PF와 직접 연관된 건설사도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요즘 신용평가사가 건설업종의 신용도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PF 우발채무와 함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고환율ㆍ고금리에 철근 등 원자재 가격은 물론 인건비가 뛰고 있다. 공사 원가율이 높아지면 기업이 돈을 벌어도(매출액) 손에 쥐는 수익성은 떨어진다. 지방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한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말 건설사 5곳의 신용등급(전망 포함)을 낮춘 데 이어 올해 들어 2곳을 추가 조정했다. 최근 신세계건설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고, 한신공영의 등급전망은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바꿨다.
유통 업종도 전망이 밝지 않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국내 유통가에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싼 가격’을 앞세워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다.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오프라인 매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올해 이마트의 신용등급은 ‘AA’에서 ‘AA-’로, 롯데하이마트는 ‘AA-’에서 ‘A+’로 하향 조정됐다.
중장기적으로 석유화학 기업의 신용등급 하방 압력도 커질 수 있다. 한국 석유화학 제품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되는데 중국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지난해 수출액(지난해 11월 누적 기준)은 8억424만 달러로 1년 전보다 47.1% 급감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에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도 커졌다. 일부 석유화학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이유다.
상당수 전문가는 장기간 이어진 경기 부진, PF 리스크 등으로 국내 기업의 신용 관련 위험이 잠재돼 있다고 평가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고환율ㆍ고금리ㆍ고유가 등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며 “여기에 “(주요국의) 정책금리 인하시기가 밀리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부에선 각종 위기설에 대해선 일축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건설업계에서 제기된 PF 4월 위기설에 대해선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