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공천룰 확정…"정치자금 문제, 소명 못하면 불공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오는 27일 치르는 총선(중의원 선거)의 공천 룰을 사실상 확정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를 퇴진하게 한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현안인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에게는 까다로운 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비리 의원 물갈이를 시작했다는 인상을 유권자에게 주기 위해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가 지난 4일 일본 의회에서 첫 소신 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가 지난 4일 일본 의회에서 첫 소신 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이시바 총리는 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천 기준을 직접 설명했다. 앞서 당이 처분을 내린 의원의 경우 당 정치윤리심사회에서 제대로 정당성을 소명하지 못하면 공천하지 않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이시바 총리에 따르면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① 당이 ‘선거 불공천’ 이상의 중징계를 결정한 의원, ② ‘불공천’ 처분보다 가벼운 경우라도 정치윤리심사회에서 책임(소명)을 다하지 않은 경우, ③ 지역(구)에서 충분한 이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등은 공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할 순 있지만, 향후 복당 여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이와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지역구 공천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정치자금을 장부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졌던 의원은 비례대표로는 중복해 출마할 순 없다. 원래 중의원 후보는 지역(소선거구)에서 떨어진 의원이 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다. 사실상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셈인데, 이런 혜택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시바 총재를 포함해 당을 이끄는 4역(간사장,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 선거대책위원장) 모두 같은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운데)가 지난달 폭우와 산사태로 집을 잃은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의 주민이 거주 중인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대피소를 지난 5일 방문하고 있다. 지지통신·AFP=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운데)가 지난달 폭우와 산사태로 집을 잃은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의 주민이 거주 중인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대피소를 지난 5일 방문하고 있다. 지지통신·AFP=연합뉴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전날 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선거대책위원장과 공천 문제를 둘러싼 회의를 가진 직후 기자들에게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 만인 오늘 모리야마 간사장과 최종 협의 후 이런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당장 후보자들이 이튿날인 7일까지 각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연맹에 공천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는 공천 룰 발표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시바 총리가 9일까지 개별 의원의 공천 여부를 확정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자민당 당기위원회가 지난 4월 정치자금 문제로 처분을 결정한 의원은 총 39명이다. 장부 미기재 금액이 500만 엔(약 4534만원) 미만인 의원 45명의 경우 처분은 받지 않고, 간사장 명의의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앞줄 가운데)와 내각 각료들이 총리관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앞줄 가운데)와 내각 각료들이 총리관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당초 ‘반아베파’인 이시바 총리가 집권하면서 “정치자금 문제가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불거진 만큼 연루된 의원들은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당 총재 선거 직후 컨벤션 효과를 잃지 않기 위해 한 달만인 이달 27일로 총선 일자를 잡으면서 ‘대거 배제’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이 바뀌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지역 조직과 기반이 없는 후보를 ‘자객 공천’할 경우 낙선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점에서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가 정면 승부를 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재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256석(총 465석)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하고 있다. 무리한 공천을 했다가는 자칫 단독 과반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여론을 더 중시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당내 주류인 옛 아베파 의원들을 무더기로 불공천할 경우 이시바 총리에 대한 불만이 커지며 당내 안정화가 어려울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공천한다는 명분을 챙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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