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간절히 기도하는 것 같았다"…곁에서 지켜본 집필 그 순간

곁에서 본 노벨상 소설가 한강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 사진은 2016년 기자간담회 모습. 박종근 기자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 사진은 2016년 기자간담회 모습. 박종근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퇴근길 강변북로 위에 있었다. 길게 늘어진 차량의 붉은 브레이크등을 졸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좋아하는 라디오가 끝난 뒤에는 듣고 싶은 게 없어 하품을 길게 하기도 했다. 그때 운전석 거치대에 꽂아둔 휴대폰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한강’ ‘노벨상’ ‘최초’ 같은 단어들이 메시지 미리보기 알림에 떴다가 사라졌다. 짧게 사라진 단어들만 보고도 비명을 질렀다. 소설가 한강이 국내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탔다. 이 상황을 형용할 단어가 내게는 없었다. 악, 으악, 우아 같은 감탄사를 차례로 내뱉으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노벨 문학상을 타는 날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년 노벨 문학상을 기다렸지만 그 언젠가가 올해가 될 줄은 몰랐다. 당연하게도 이 순간 가장 기쁜 사람은 작가 본인이겠지만 오늘만큼은 이 역사적인 기쁨을 온 국민이 나눠 누리면 좋겠다. 나도 오늘만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편집자로서 뿌듯하게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자랑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지만 이 작품만은 출간 전부터 나의 자랑이고 자부였기에 기꺼이 축배를 드는 마음이 되었다. 『소년이 온다』는 내게도 무척 각별한 작품이다. 책장에서 『소년이 온다』의 초판본을 꺼내들며 한강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들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블로그에 매일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올리던 십 년 전 겨울을.

행갈이 지점, 구두점 위치까지 꼼꼼한강, 진심 담은 간절한 기도 같아

11일 경기도 파주의 한 인쇄소 직원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인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1일 경기도 파주의 한 인쇄소 직원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인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소년이 온다』는 출간 전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작품이다. 한강 작가는 업로드 몇 주 전에 미리 일정 분량의 원고를 보내주었고, 여유롭게 교정을 보고 편집 내용을 주고받아 반영할 시간까지 넉넉했다. 언제든 쉽게 고칠 수 있는 온라인 연재였지만 어떤 지면이 되었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작가의 작업 방식에 꽤 감명을 받았다. 온라인 연재 내용을 그대로 조판해서 책을 내도 충분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회의 연재에 작가의 진심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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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갈이의 지점, 여러 번 고심해 고친 단어는 물론이고 구두점의 위치 하나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었다. 연재를 하면서 한강 작가와 거의 매일 메일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를 했다. 연재를 하는 겨우내 출근한 뒤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업로드한 소설을 모니터링하면서 작가와 아침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모니터를 바라보면 화면 너머로 앙상한 겨울나무가 펼쳐진 파주출판단지의 심학산 자락이 보였다. 어떤 날에는 눈이 덮였고, 어떤 날에는 강추위로 세상이 다 얼어붙은 것 같았다. 광주의 오월을 그려내는 한강 작가의 마음이 저 창밖과 같을 거라고 종종 떠올리곤 했다.

나는 내가 이 작품의 첫 번째 독자라는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다. 원고가 도착하면 출력을 하는데, 출력물을 들고 프린터기에서 책상 서너 개를 거쳐 내 자리로 돌아가던 길이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건 독자들이 매일 연재를 읽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편집 생각은 넣어두고 그저 눈으로 읽던 첫 독서의 순간, 그때 나는 많이 울었다. 작가에게 보내는 메일에 감상을 적을 때마다 이 인물들을 힘겹게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안부가 자주 걱정되었다. 여전히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무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작가를 위로해줄 사람은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일 것이기에. 메일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면서 이런 마음을 더 자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어서 연재가 끝나기를, 작가가 얼른 이 작품을 털어버리고 좀 평안한 마음이 되기를 바랐다.


작가와 직접 만난 것은 연재를 다 마치고 난 뒤였다. 수개월 동안 메일을 주고받고 통화를 해서인지 오래 뵌 분 같았다. 사진 속 옅은 미소의 환한 얼굴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낸 듯 마르고 지친 몸과 마음이 확연히 보여 가슴이 아팠다.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는 소설 속 열다섯 소년이 겹쳐 보였다.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이 여전히 소설 속 인물들을 애도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다’라는 관용구를 눈으로 직접 본다면 아마 당시 작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느긋한 음성은 조금 후련한 듯 들리기도 했다. 얼마나 괴롭고 지난한 자신과의 싸움이었을까. 하물며 그 일이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힘겹게 펼쳐 보이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 시대를 증언하는 숙명과도 같은 소명을 다하는 작업이었으니. 작가와 헤어지고 인사를 나누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마 단둘이 만났다면 한번 안아드렸을 것 같다고 뒤늦게 생각했다. 꽉 안으면 부서질 듯 여린 상태라 아마도 가볍게 등을 쓸어드렸을 것이다.

연재 원고를 주고받던 그 겨울에 나는 작가 한강이 매일 문학을 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본 한강은 숭고한 구도자였다. 마치 간절한 기도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진실을 향한 진심이었다. 연재 원고를 단행본으로 묶는 작업을 하며 한강 작가가 그림 한 장을 건네준 적이 있다. 작품의 의미와 이미지를 잘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검고 어두운 바탕에 기도하는 모양으로 가만히 모은 손을 그린 그림이었다. 기도하는 손 주변이 환했다. 책을 만드는 동안 그 그림을 책상 앞에 걸어두고 자주 바라보았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장면들 속에 한강 작가의 깊은 울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목격했던 그 매일매일의 감동이 이번 수상을 통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올 것만 같다. 우리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언제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꽤나 통쾌하고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매일 읽는 삶을 꿈꾼다.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상처 입은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소년이 온다』 중에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한강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작가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선영  『소년이 온다』 책임편집자, 출판사 핀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