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에서 시험지 유출 논란이 발생했다. 뉴시스
연세대가 2025학년도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고사 문제지를 촬영해 유출한 수험생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험 관리 부실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연세대는 “논술시험의 공정성을 훼손시킬 만한 행위는 파악되지 않았다”며 재시험은 없다는 입장이다.
14일 수험생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논술 시험 당시 허술했던 관리·감독 정황이 드러났다. 먼저 당시 한 고사장 감독관이 1시간여 일찍 자연계열 논술시험지를 배포해 사전 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논술시험 시작 전인 오후 12시 52분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선 “1문항 그림 쓸적 보임. 정사각형 4개 등분되는 직사각형 그림 있다”, 오후 1시 11분엔 “근데 유출됐다는 거 정사각형에 직사각형 4개면 벡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글이 게시됐다. 디시인사이드 캡처
이후 시험 문제 내용이 언급된 글과 시험지를 찍은 사진 등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엔 “1문항에 정사각형 4개 등분되는 직사각형 그림 있다”, “백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등의 글이 시험 시작 전에 게재됐다. 연세대는 해당 게시글에 대해선 문제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도형이 아니라 텍스트가 중요한 ‘확률과 통계’로 도형 형태와 개수로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이유였다.
연세대는 자연계열 논술시험지를 찍은 사진에 대해 ″사전 유출이 아니다″며 “사진을 찍은 수험생을 특정했고, 사교육 업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독자 제공
연세대는 시험지를 찍은 사진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13일 수험생 커뮤니티 등에서 공유되기 시작한 해당 사진에는 1번부터 6-2번 문항까지 나와 있었다. 또 연세대에서 인정한 4-2번 문항의 표기 오류도 있었다. 한 수험생은 중앙일보에 “시험이 끝난 뒤 지인으로부터 ‘이제 사진이 곧 퍼질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공유 받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해당 사진은 시험 종류 이후 시험지를 걷을 때 찍힌 것으로 사전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진을 찍은 수험생을 특정했고, 사교육 업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 유출자에 대해선 부정행위로 인한 탈락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시험 정보 유출 여부와 별개로 논술 시험 관리가 부실했던 의혹은 속속 제기됐다. “시험지 사전 배포 당시 수험생들의 휴대전화를 꺼두게 했다”는 연세대 입장과 달리 실제론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3일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또 다른 시험지와 수험증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사진정보에는 시험 당일인 12일 오후 12시 59분에 찍혔다고 표시됐다. 해당 시각은 시험지가 사전 배포된 지 4분이 지난 때였다. 시험지가 답안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글쓴이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데도 제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세대 관계자는 “해당 사진의 진위 파악이 우선”이라며 “내부적으론 ‘이렇게는 찍기 어려운 사진 아니냐’며 촬영자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3일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또다른 시험지와 수험증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이 찍힌 시각은 시험지가 사전 배포된 지 4분이 지난 때였다. 디시인사이드 캡처
휴대전화 부실 관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선 챗 GPT를 활용한 부정행위 방법론이 퍼지고 있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서 주머니에 넣었다가 화장실에 가서 문제풀이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시험 종료 이후 연세대 논술시험을 챗 GPT로 풀이한 사례가 공유되고 있다.
수험생 A군은 “감독관이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가방을 강의실 앞 칠판에 두도록 지시했다”면서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 개인가방에 넣지 않은 이도 있다. 나도 그랬다”고 밝혔다. 연세대 자연계열 논술시험 수험생 B군은 “화장실 가겠다며 밖으로 나간 뒤 다시 시험 보는 사람이 있었다”며 “챗 GPT로 부정행위가 가능하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세대는 전날과 마찬기자로 “재시험은 없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대학도 불법 촬영으로 인한 피해자”라며 “수험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체진상조사위를 통해 각종 의혹을 밝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논술고사는 대학교의 권한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면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