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법 형사7단독 한지숙 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4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아들을 둔 A씨는 지난해 10월 15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 상가와 전봇대 등에 '5학년 집단 따돌림 폭행 살인미수 사건 안내문'이라는 제목의 유인물 15장을 부착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유인물에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와 폭행 사실이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A씨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유인물 부착 이틀 전(지난해 10월 13일) 아이 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같은 반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곧장 학교로 가 담임·경찰관 등과 함께 아들이 당한 폭력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더니 남학생 여러 명이 같은 달 11~13일 A씨 아들을 들어서 집어 던지거나 명치를 찍어 누르고 목을 조른 사실을 알게 됐다. A씨 아들은 A씨에게 가해 학생들이 자신을 눕힌 뒤 못 움직이게 하고 발로 밟거나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는 폭행 내용을 털어놓기도 했다.
A씨는 아들 이야기를 토대로 유인물을 만들어 주민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였지만, 다음 달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가운데 1명인 B군이 가담자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B군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A씨 아들은 B군도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으나 학폭위는 '구체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고, 학교 폭력이 일어난 마지막 날인 10월 13일에는 해당 학생이 결석했다'고 설명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런 사연으로 A씨의 명예훼손 혐의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해당 사실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시해야 하는데, A씨가 유인물을 붙인 시점에선 B군을 학교폭력 가담자로 충분히 오인할 만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판사는 "피고인이 유인물을 부착한 시점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다니는 같은 반 모든 남학생이 학교폭력을 저질러 사과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이후였다"며 "당시 담임 선생님은 B군이 결석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 입장에선 B군 또한 학교폭력을 저질러 함께 사과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적시한 사실이 허위여야 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도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당시 작성한 유인물 내용을 허위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