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14일 의원총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현재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총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개정안에 담겨 있다. 거대 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만큼 단독으로 상법 개정을 밀어 붙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경제 8개 단체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데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 리스크에 따른 이사의 의사결정 지연은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고, 투기 자본에 의한 경영권 공격 확대로 기업 성장을 저해할 거라는 설명이다. 이어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를 심화시켜 투자자에 피해를 끼치고 우리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재계가 연일 여의도를 향해 우려 목소리를 전달하지만, 여당은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당초 21대 국회에서 무산됐던 상법개정안 논의를 재점화 시킨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상법을 고쳐야 한다”며 힘을 보탰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야당과 소통할 기회가 있다면 자본시장법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M&A) 시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지 않겠냐”며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밀고 있다. 정부도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서 법무부가 일찌감치 상법 개정에 반대해왔고 재계의 우려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곧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시 급한 반도체법은 언제
반도체법 외에도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법안과 다음 달 말 일몰 예정인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 및 R&D 투자세액 공제 3년 연장 법안에 대한 논의도 더딘 상황이다. 경제단체들은 “우리 경제는 대외적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갈등 심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신성장 동력의 부재와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위축 등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며 “지금은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이지 기업의 성장 의지를 꺽을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