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지갑 열게 한 '마당발'…한국 문화유산 지켜온 그의 소회

 

퇴임을 앞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퇴임을 앞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문화유산을 지키는데 일본 측 성의가 있어야 한다며 무라야마 전 총리를 회원으로 가입(2010년 6월)시킨 게 기억에 남아요. 당시 1만엔(약 10만원)쯤 상징적으로 받았는데, 그 분이 ‘당연히 할 일’이라며 호응해줬습니다.”  
 
2009년부터 15년간 문화유산국민신탁(이하 신탁)을 이끌어온 김종규(85) 이사장의 소회다. 한국과의 과거사 관련해 가장 진전 있는 담화를 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그의 ‘마당발 섭외’에 넘어가 한국 문화유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기금에 성의를 표했단 얘기다. 2007년 출범한 신탁은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비롯해 전남 벌교 보성여관, 서울 통인동 시인 이상의 집 등을 환수·복원하는 데 앞장섰다. 최근 퇴임 의사를 밝힌 그를 지난달 28일 신탁 사무실이 있는 서울 정동 중명전(덕수궁 인근)에서 만났다.  

신탁 설립 추진위원장(2007)을 맡고 2009년 2대 이사장에 취임할 땐 이리 오래하실 줄 몰랐죠.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본받아 보전가치가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매입·관리할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산하 특수법인으로 출범했는데, 회원 모으는 게 급선무였어요. 당시 이건무 청장이 ‘1000명까지 늘려 달라’해서 맡았는데, 일각에선 ‘10만명 채울 때까지 해달라’고 했죠. 15년간 1만7300여명으로 늘리긴 했습니다만 아쉽습니다.”
 

무보수로 계속 연임했습니다.
“맡을 때부터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회원(평균 월회비 1만원) 가입을 종용하니 때론 피하기도 하셨지만 결국은 이해하고 이렇게 키워주셨죠. 그간 물러날 기회를 못 잡았는데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고 신탁도 새로워지는 계기가 된 듯합니다.”
 
그는 1970~80년대 한국 지성인의 서고 역할을 한 삼성출판사 사장·회장을 역임하며 자연스레 문화예술 인사들과 교류 폭을 넓혔다. 1990년 국내 최초로 출판 박물관을 설립했다. 한국박물관협회장을 맡은 2004년엔 서울세계박물관대회(공동위원장 역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은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지난해 인촌상 수상 땐 상금 절반인 5000만원을 신탁에 기부했다.

떠나신 뒤에 신탁 회원이 줄지 않을까 염려도 나옵니다.
“요즘엔 대를 이어 자녀까지 가입시키는 추세입니다. 문화인이라면 가입하라고 설득해왔으니 탈퇴하진 않을 겁니다. 연 1회 신탁 회원 대상으로 여는 음악회에 1000명쯤 모이는데, 그게 ‘사람 장터’ 역할도 해요. 신탁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이홍구·정세균 전 총리,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께 늘 감사한 마음이죠. 김황식 전 총리도 2년 전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라며 가입신청 했습니다.”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만난 김종규 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만난 김종규 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 이사장은 고 이어령 문화부장관(1934~2022)과 평생 각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장관이 1964년 삼성출판사의 편집고문을 맡으며 시작된 우정이 반세기 넘게 이어졌다. “문화계에서 이 장관이 공중폭격기라면 나는 ‘땅개 작전’으로 주무른다는 말도 나왔다(웃음)”고 했다. 85세 노구에도 그를 부르는 문화행사가 있으면 달려가고, 펀딩이 필요할 때 기관·기업과 예술가를 적극 맺어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십 인생에서 30년은 공부·준비하고, 30년은 생업에 바치고, 30년은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야 한다가 지론입니다. K팝·한류가 뜨겁지만 문화강국 기반이 튼튼해야 오래 갑니다. 앞으로도 신탁 회원을 늘리고 박물관문화를 키우는 데 소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