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후폭풍과 탄핵 쟁점들
이 규정은 계엄이 선포되는 상황이란 매우 중대한 국가적 위난 상황이며, 이를 함부로 발동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 긴급권 중에서도 비상계엄이 갖는 의미와 비중이 매우 특별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매우 엄격한 요건에서만 발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분한 사실관계 규명이 우선
예단 말고 수사 결과 지켜봐야
12·3 계엄, 헌법상 요건 못 갖춰
학계 “비상계엄, 탄핵요건 충족”
책임총리? 한시적 역할만 해야
현상 유지하려 하면 반발 클듯
예단 말고 수사 결과 지켜봐야
12·3 계엄, 헌법상 요건 못 갖춰
학계 “비상계엄, 탄핵요건 충족”
책임총리? 한시적 역할만 해야
현상 유지하려 하면 반발 클듯
지난 3일 야밤에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많은 국민이 놀라고 불안해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그날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의 이유로 반국가 세력의 준동, 국회의 예산안 삭감과 과도한 탄핵소추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국민 앞에 속 시원하게 공개하지 못한 다른 특별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가, 북한과의 전쟁 위험이 매우 높아진 것은 아닌가 등에 대한 우려가 생기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짧은 6시간짜리 계엄
계엄사는 그날 밤 국회의원 190명과 직원 수백 명이 모여 있던 국회에 초기엔 계엄군 50여 명을 투입해 국회의장과 여야 당 대표 등을 체포 및 구금하려 시도했다. 그런데 TV 방송 카메라 등에 비친 무장한 군인들은 우왕좌왕하거나 허둥댔을 정도로 엉성해 보였다. 결국 지난 4일 새벽 1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결의로 이번 비상계엄은 6시간짜리로 막을 내렸다.
역사상 최단 기간에 끝난 비상계엄이었지만 정치적 후폭풍은 초대형 태풍급이다. 정치 진영에 따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하고 다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위헌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넘치는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사회, 그리고 법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탄핵 요건의 충족 여부, 내란죄 성립 여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 관련한 책임총리제의 의미, 향후 비상시국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등이 뜨거운 쟁점이다.
국가 기능 저하, 군대로 풀 문제 아냐
‘12·3 비상계엄’이 헌법상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치 진영을 떠나 대부분의 법률가가 의견을 같이한다.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대규모 폭동 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윤 대통령이 제시했던 예산안 삭감과 과도한 탄핵 남발 등으로 인한 국가 기능의 저하가 있었더라도 군대를 동원해 해결할 수준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과 계엄법 규정을 어겨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한 것이나, 계엄사령부 포고령(1호)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등의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한 것은 위헌이다. 특히 전공의들의 복귀를 명령한 포고령 내용은 계엄의 성격 및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처단’과 같은 극단적 용어 사용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게 무리한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대통령 탄핵소추 요건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견을 찾기 어렵다. 이번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직무 집행과 관련한 행위이고, 위헌적 행위라는 점 때문이다. 다만, 헌법재판소에서 불법의 중대성과 관련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지난 7일 민주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정하고 표결에 불참했다. 결국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결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투표 불성립’(부결)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14일 재차 표결을 예고한 상태다.
경찰·검찰·공수처, 경쟁적 수사 돌입
다만 형법 제87조와 제91조에 비춰 볼 때, 그날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것이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즉, 단순히 우발적인 사고 등을 방지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면 ‘국헌 문란의 목적’이 인정돼 내란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형법 87조의 ‘폭동’에 해당하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1997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1996도3376’)에 따르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갖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위와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아직 관련 증거·자료 등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 판단은 시기상조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DJP연합 시절 사실상 책임총리제
윤 대통령이 12·7 담화에서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고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힘을 실어 주면서 사실상 ‘책임총리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에서는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나 여당 대표가 행사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윤 대통령의 권한 위임에 의해 정당하게 권한이 이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헌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에 사실상 책임총리제를 시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른바 ‘DJP연합’을 통해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당시 김종필 총리는 장관의 절반을 임명할 권한을 요구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엔 이해찬 총리를 ‘책임 총리’로 평가한 전례가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제1 야당의 박근혜 대표에게 책임총리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전례를 보면 책임총리제 자체는 새로운 것도, 위헌적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책임총리제가 인정되더라도 두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책임총리의 권한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여야의 협의나 윤 대통령의 협조가 필요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경우 국가원수인 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조약 체결에 비준하는 것까지 총리가 대신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여야 합의를 전제로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조약안에 서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둘째, 미국의 부통령과 달리 총리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책임총리가 지금 같은 비상시국을 빨리 극복하기 위한 한시적 역할에 그쳐야 함을 의미한다. 언제, 어떻게 정상적 상태로 복귀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나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상당 기간 혹은 임기 말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면 국민의 반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이 궤도를 이탈하게 할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분간 책임총리제를 통해 국정을 이끌어가더라도 조만간 또 다른 선택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임기단축 개헌이 될 것인지, 탄핵소추에 따른 헌재의 탄핵 결정이 될지, 아니면 윤 대통령의 자발적 하야가 될지 지금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 지형과 국가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부디 극단적 진영 갈등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정치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민생을 먼저 챙기는 정치가 자리 잡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