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키가 사라졌다
올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거나 맡을 예정이던 국가AI위원회, 국가우주위원회, 국가바이오위원회 등 각 분야 정책 의결 기구도 공식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달 출범 예정이던 국가바이오위원회는 탄핵 정국으로 출범이 연기됐다. 우주항공청을 개청하며 정부 차원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던 우주 분야는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면서 동력을 잃을 위기다. 당장 이달 말 차세대발사체 개발과 달 착륙선 등 우주 개발 주요 아젠다를 논의할 계획이던 국가우주위원회 제3차 회의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국가AI위원회도 위원회 활동의 기반이 될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원활한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우주나 AI 등 하루가 다르게 기술력 격차가 벌어지고, 국제 협력이 중요한 분야는 국가 차원에서 추진력 있게 끌고 가지 않으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끌려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함정
하지만 AI 기본법 처리가 올해도 불발됐고, 여기에 더해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인프라 부족을 해소하고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와 협의 중이던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예산 증액 논의도 답보 상태에 놓이면서 AI 스타트업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사실상 해외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대여하는 식으로 쓰게 되면 외화도 유출되고, 비용 부담이 커지며 AI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도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며 논의가 중단됐다. 한 AI 반도체 스타트업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엔비디아를 대체할 AI 반도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반도체 특별법의 경우 여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의 관심도도 높아 올해 꼭 통과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번 계엄 사태로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기정통부는 최대한 국정 공백 없이 정책 추진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10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 과기정통부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9792억원(5.47%) 늘어난 18조8969억원이다. R&D(기술개발) 예산도 전년 대비 11.5% 늘어난 29조6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AI-반도체·첨단바이오·양자 등 3대 기술의 2030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3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기초연구에 역대 최대 규모인 2조9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 등을 밝혔다. 같은 날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부터 추진해 온 R&D 분야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 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정부는 법안을 이달 내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최근 탄핵 정국에서 야당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