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탄핵 정국에도 규제 혁신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며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 대상 주 52시간 규제 완화 등을 호소했다.
대한상의·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와 국무조정실은 11일 오전 ‘규제 혁신 간담회’를 갖고 경제계의 애로 사항을 공유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규제 혁신과 관련해 남형기 국무2차장과 규제 담당 실·국장이 총출동해 경제6단체와 간담회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간담회에서 경제계는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대통령 탄핵소추 추진으로 법안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이날 한 참석자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별법이 꼭 필요한데 국회에서 진전이 없어 우려된다”며 “정부가 힘 있게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도체 관련 안전 규제의 합리적인 개선도 건의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반도체 구조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클린룸’(청정 공간)에도 소방관이 들어갈 수 있는 창문을 설치하라는 규제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런 불합리한 규제를 신속히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장은 일반 건물보다 층고가 높아 고층의 경우 사다리차를 통한 진입이 불가능한데도 진입창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규제 등을 풀어달라는 지적이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 서비스산업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의도 나왔다. 경제계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서비스업 비중(58%)이 선진국보다 낮다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2011년 발의된 기본법은 매년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9월 한경협은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30대 규제 개선 과제’를 정부에 전달했다.
중소기업계는 인력난으로 외국인 고용이 필수적인데 현장에서 외국 인력 활용에 애로를 겪는다며, ‘사업장별 고용허용 인원 제한’ 규제 등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또 현장에서 규제 개혁을 체감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정부에 건의한 사항에 대한 피드백을 강화해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제단체들은 지난 3일 계엄 사태의 여파로 이날 간담회가 취소될 가능성을 높게 점쳤으나, 국무조정실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비상시국에 간담회를 그대로 연 것은 정부의 규제 혁신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간담회에서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라고 말했다. 향후 경제계와 국무조정실은 상시 소통·협력 채널을 만들고, 반기별로 정례 회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규제를 총괄하는 부처로서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계와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채널을 마련했다”며 “간담회에서 나온 건의들을 잘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