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미 상무부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대해 61억6500만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최종 확정했다. 미 상무부는 “기업 실사가 완료됐다”라며 “약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현재 2% 미만인 미국의 첨단 메모리 제조 점유율을 2035년까지 약 10%로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보조금을 활용해 뉴욕과 아이다호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로써 인텔(78억6600만 달러)과 대만 TSMC(66억 달러), 글로벌파운드리(15억 달러)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았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지난 5일 SKC 자회사인 반도체 유리기판 회사 앱솔릭스가 7500만 달러(약 1077억원) 수령을 확정한 게 전부다. 바이든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한 20여 개 회사는 대부분 연말까지 자금을 배정받을 거라고,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보조금 소식만 아직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신규 공장 투자를 결정했다가, 이후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하면서 당초 계획(17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신규 공장에선 최첨단 4나노와 2나노(1나노=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수율(양품 비율)과 고객 수주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장 가동 시점이 올해 말에서 2026년으로 늦춰졌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테일러시 프로젝트에 대해 “상황 변화로 조금 힘들어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국내 정치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환율 등 돌발 변수가 생겼다.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면 장비나 설비 반입 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나마 미국 사업의 리스크를 일부 상쇄할 것으로 기대한 반도체특별법 논의마저 탄핵 정국에 모두 멈춰진 상태다. 당초 여당이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에는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규제 예외 외에도, 보조금 지급 등 직접적인 재정 지원의 근거도 담을 예정이었다.
중국산 제품의 영향으로 구형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해 수익성에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변수로 삼성전자가 막판에 미국 투자에 속도 조절을 고민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미국 정부와의 보조금 협상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라며 자세한 언급은 않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선 여러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 시점을 고민할 수 있고, 미국은 일단 공장에 장비가 들어가야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그런 투자가 늦어지니 (미국이) 보조금을 시원하게 확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PMT 체결 순서에 따라 보조금 확정 또한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연말까진 지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9억 달러 가량 투자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세우고 보조금으로 4억5000만 달러를 받기로 돼 있다. 회사 측은 다른 기업들보다 3~4개월 가량 늦은 지난 8월에 PMT를 체결한 영향이 일부 있을 뿐, 순조롭게 협상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보조금 지급에 반대 입장인 트럼프 정부가 들어설 경우 보조금 규모가 예상보다 축소되거나 다른 투자 조건이 붙을 수 있어 한국 기업들로선 빠른 시일 내 확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