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네 번째 담화를 들은 시민들과 각계에선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 같은 주장을 쏟아냈다”며 실망감과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윤 대통령은 30분간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야당의 공직자 탄핵 ▶간첩죄 수정 불발 ▶야당의 예산 삭감 ▶선거관리위원회의 허술한 전산시스템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목적으로 비상계엄령을 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도 주장했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온·오프라인에서는 불만이 쏟아졌다. 직장인 김민정(28)씨는 “야당의 잘잘못을 떠나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선을 넘는 일이었다”며 “그런데도 대통령이 담화에서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다니, 한심하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변호사 임모(37)씨는 “‘향후 재판에서 심신 미약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남기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며 “국격 떨어지는 담화를 보며 왜 대리로 수치심을 느껴야 하냐”고 토로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어떻게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냐”며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지적한 것 관련해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의사 김승민(43)씨는 “유튜버들의 가짜뉴스·지라시 등에서나 보던 내용을 대통령이 주장할 줄은 몰랐다”며 “담화를 보고 혈압을 쟀는데 다행히 정상이었다”고 했다. 대학원생 윤지영(38)씨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에코 체임버’(특수재료로 벽을 만들어 소리가 되돌아오게 하는 반향실 효과)가 떠올랐다”며 “(대통령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교 교수는 담화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내란수괴(윤 대통령)를 포함해 아스팔트 우파 외, 어떤 기준에선 멀쩡할 것 같은 사람 중 적지 않은 숫자가 그 생각에 동의하고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가짜뉴스 유튜버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날 담화 직후 지난해 10월 발송했던 ‘선관위 정보보안시스템 컨설팅 결과 관련 입장’을 언론에 다시 배포하며 “선거결과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한국의 투·개표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진행되고 정보시스템과 기계장치 등은 이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투·개표 과정에 수많은 사무원·관계공무원·참관인·선거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물 투표지를 통해 언제든지 개표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며 “이번 보안 컨설팅에서 북한의 해킹으로 인한 선거시스템 침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대통령 담화를 두고 날 선 반응이 이어졌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한 작성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를 믿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극우 유튜버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작성자는 “대통령 대국민 담화 수준이 꼭 극우 유튜버 ‘윤석열TV’ 같다”고 비꼬았다.
담화를 주제로 한 각종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트)도 유행이다. SNS에서는 ‘대국민 담화(X) 대국민 담와(O)’ 문구가 올라오는가 하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시 수원역에서 한 시민이 소주병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진과 윤 대통령의 담화 장면을 합성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