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체제 주역' 우상호의 제안 "내치는 총리, 인사권은 지방에" ['포스트87' 길을 묻다]

‘포스트 87’ 길을 묻다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권력자 개인의 과오만큼 '87년 체제'의 불완전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평가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에 주요 정치인의 의견을 릴레이로 전달한다. 두 번째 인터뷰는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이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계엄'이라는 단어가 우리 세대에게 갖는 위력"이라고 말했다. 

우 전 의원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시위를 주도했다. ‘6월 항쟁’ 끝에 6·29 선언이 나왔고, 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의 개헌이 이뤄졌다. ‘87년 체제’ 6공화국의 탄생이었다. 이때의 성과물은 우 전 의원이 제도권 정치에 입성하는 데 자양분이 됐고, '86그룹'의 맏형격으로 활동했다. 이로부터 37년이 지난 현재, ‘87년 체제’ 탄생의 주역이었던 우 전 의원은 87년 체제의 종식이라는 요구와 직면하고 있다.

우 전 의원은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계엄 사태를 87년 체제의 종식으로 연결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5년 단임제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은 필요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의 담화를 듣다가 ‘계엄 선포’에 전율했다. 우리 세대에게 ‘계엄’은 피와 희생을 의미한다. 트라우마가 있다. 나도 반사적으로 짐부터 쌌는데, 이후 TV를 보니 군인들이 태업하듯 움직이더라.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해 개헌 목소리가 크다. 
“필요성은 동의한다. 예컨대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책임정치를 위해 꼭 필요하다. 5년 단임제는 87년 개헌 때는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크다 보니 타협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대통령이 업무를 파악하는 데 1년을 소비하고, 이후 마음이 급해지니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고립되고 실패한다. 윤 대통령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를 ‘87년 체제 종식’으로 명명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당시 만든 헌법의 핵심은 5년 단임제와 직선제다. 단임제는 바꾸더라도 직선제는 여전히 유효한데, 왜 그것을 부정해야 하나. 다만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지 고민은 필요하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거론된다.
“내각제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쾌감을 버리기 어렵다. 정치인이 모여 총리를 뽑는 내각제를 수용하지 않을 거다. 이원집정부제는 효율성이 낮다. 국민이 대통령을, 의회가 총리를 선출한다고 치자.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력 다툼으로 아무것도 안 될 거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대안이 뭔가.
“현실적으로는 책임총리제다. 한국 대통령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모든 걸 다 본인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독박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와 책임을 분산해야 한다. 대통령은 시대에 긴급한 어젠다, 예를 들면 인구나 기후 문제 등을 추진하고 총리는 내치 전반을 다루는 식이다. 또 인사권과 재정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요즘 지방을 가보면 지역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대통령만 결단한다면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
 

4년 중임제는 되려 대통령 권력을 강화한다는 반론도 있다.
“중임제에선 재선 가능성 때문에 권력을 남용하기 어렵다. 오히려 단임제에선 '다음'이 없으니 3년차부터 ‘될 대로 되라지’ 식으로 권력을 남용한다.”
 

다당제가 가능한 선거제부터 바꾸자는 주장도 많다. 
“가치 정당이 발달한 유럽이라면 몰라도 인물 중심인 한국 정치에서 다당제를 하면 혼란이 더 가중될 거다. 정책 경쟁이 아니라 인물 경쟁으로 귀결된다.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갈등이 덜 하다는 것도 환상이다. 2017년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4당 체제였다. 막상 겪어보니 이견 조정이 어려워 합의로 되는 게 거의 없었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 전 의원은 한덕수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 논란에 대해 “야당이 ‘우리 말 안 들으면 탄핵한다’는 식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특검법에 대해서도 “법으로 보장된 숙고할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특검법에 대해 24일까지 공포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굳이 기한을 정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양곡법처럼 정책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는 탄핵할 수 없다. 김건희 특검법도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한 것이니 권한대행으로서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내란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탄핵해야 한다. 본인도 연루된 것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다.
“솔직히 대통령 탄핵은 그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또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정파를 떠나 국가적으로 큰 비극이다.”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 승리하면, 민주당이 의회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이 자초했다. 시간을 되돌려 총선을 다시 치르기라도 하란 말인가. 계엄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 건 말도 안 된다. 여당이 의회를 마비시키려 했던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