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 로이터=연합뉴스
피치의 제레미 주크 APAC(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와 피치 산하 연구원 BMI의 캐롤린 웡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도) 애널리스트는 23일 중앙일보와 서면으로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치는 S&P, 무디스와 함께 3대 국제신용평가사로 평가받는다.
국가신용등급, 단기 영향 없지만…“장기화시 하방 압력”

제레미 주크(Jeremy Zook) 피치 APAC(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 피치 제공
이번 사태로 당장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A-/안정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주크 이사는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국가신용등급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질이나 대외 경제 안정성을 훼손시키진 않을 것”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금융 시장의 긍정적인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순 있지만,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선제적인 정책 대응 덕분에 하방 위험은 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적·정책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다. 주크 이사는 “정치적 위기가 오래 지속하거나, 분열로 인해 정책 결정의 효율성과 경제 성과, 재정이 약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한국 경제는 글로벌 무역보호주의, 인구구조 변화 등 구조적인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는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지속해 정책 효율성이 떨어지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추가경정예산(추경) 요구가 커지면서 재정 부담이 늘어날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과 ‘경기 부양’이라는 딜레마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정부(D2) 부채는 1217조3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7%를 기록했다.
주크 이사는 “높은 재정 적자가 지속해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추세가 유지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며 “정치적 상황이 경제에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치면 공공재정 지출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질 가능성이 있고, 이는 확장 재정으로의 전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웡 애널리스트도 “(4조1000억원 감액된) 수정 예산안이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추경 필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지만, 재정 건전성 회복을 더디게 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盧·朴 탄핵보다 불확실성 크다”…트럼프 리스크 대응 ‘관건’

캐롤린 웡(Caroline Wong) 피치 산하 리서치센터 BMI 컨트리 리스크 애널리스트. BMI 제공
외교 공백으로 트럼프 리스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웡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내년 2분기부터 한국산 수입품에 10% 관세가 부과될 경우, 2026년 말까지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누적 0.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주크 이사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단순히 협상 전략일 수도 있다”면서 도 “한국의 경우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출생’ 한국, 연금제도 개혁 시급”
관건은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종식되느냐에 달려있다는 평가다. 주크 이사는 “한국은 외환보유고와 순대외자산 지위에서 매우 강한 완충재를 보유하고 있어 외부 충격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경제도 어느 정도 회복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시작하면 한국 경제 전망은 다시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