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AI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격하한 야당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육자료는 교과서와 달리 예산을 의무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정부가 주도하던 AI교과서 전면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권한 대행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즉각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AI디지털교과서→교육자료로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디지털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석 의원 276명 중 찬성 178표, 반대 93표, 기권 5표로 가결됐다.
법 개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AI교과서 도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교육위 소속 고민정 의원은 표결 전 토론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며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사용해 본 뒤 교육 효과를 분석해 긍정적 요인이 크다면 정식 교과서로 채택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 정공법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AI교과서 도입을 강행하기 위해 교육청을 압박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서 지난 24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해당 법안을 보류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유보 건의문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입장문 채택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교육위원장인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협의회 명의로 건의문을 발표하려면 내규 상 교육감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한데, 위원장실에 조사한 바로는 세종, 경남, 울산, 인천, 서울, 충남 등 6개 교육청이 법 개정에 찬성한다고 했다”며 “협의회가 과반도 되지 않는 견해를 전체의 의견인 양 발표한 경위를 국회 교육위원회가 샅샅이 파헤치겠다”고 했다.
교육부, 거부권 행사 건의…“1년 유예는 유지”
한 대행이 이 부총리의 요청대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해당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되돌아와 재표결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경우 법안이 다시 통과되려면 국회 재적의원(300명)의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야당 의석은 192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법안이 폐기되더라도 현장 적용 시기를 1년 유예하는 안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의를 하는 초중등교육법 통과를 보류하면 AI교과서 전면 적용 시기를 2026년으로 미루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부총리는 “향후 국회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소통하고 학교 현장의 혼란도 최소화시키겠다”고 말했다.
한 대행도 탄핵 위기…현장 혼란
다만 현재 한 대행도 탄핵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한 대행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는 입장이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한 대행의 권한이 정지된다고 볼 경우 또 다른 권한대행이 정해질 때까지 재의요구권 행사는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여당은 권한대행의 탄핵 기준을 ‘200석’으로 주장하고 있어 한 대행이 탄핵소추안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거부권 행사를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당분간 현장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신학기를 앞두고 12월엔 교과서 선정 작업이 진행돼야 하지만 이미 경남, 세종, 충북 등 일부 교육청에서 디지털교과서 선정을 보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실제 채택률도 크게 떨어질 우려가 나온다. 교과서 출원사들의 줄 소송도 예상된다. 고영종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임에도 소급 입법으로 교육자료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발사들이 헌법상 신뢰 보호의 원칙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