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탄핵 정국 한가운데에 ‘무속’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부인의 ‘무속 심취설’이 새로운 도화선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덕수 총리 부인이 화가다. 그림계의 큰손인데 무속에 너무 많이 심취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인이 김건희 여사,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 총리도 무속에 그렇게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가 (싶다)”라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이틀 뒤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대행이 저의 친구라 이런 말을 하기까지 인간적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대행의 부인과 제 아내도 오랫동안 잘 아는 사이”라며 “한 대행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저의 기여도가 있다. 제가 눈이 나빠서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한 총리와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손발을 맞췄던 이력이 있다.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도 친야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의 유튜브에 출연해 “한덕수가 점괘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은 같이 일해 본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라며 “김건희씨와 한 대행의 부인이 다니는 점집이 겹친다는 얘기가 유력하다”고 거들었다.
한 총리는 2년 8개월 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 이미 ‘배우자 점술 논란’을 치렀다. 2022년 4월 민주당 인사청문특별위원이던 이해식 의원이 “한 후보자 부인과 이름 대면 알 만한 여성이 강남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라는 등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관련 증인을 부르겠다고 했다. 이에 한 총리는 당시 “공직생활 기간 동안 배우자의 명리학에 대한 관심이 후보자의 공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며 “일간지에 매일 나오는 오늘의 운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제기된 한 총리 배우자의 ‘무속’ 의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과 ‘클리앙’ 등 커뮤니티를 통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의혹을 받고 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무속인으로 활동하며 점집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계엄의 배후에 ‘무속’이 있다”는 신빙성이 높아지면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도 무속이 구설수에 올랐다. 2016년 야권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주술사’, ‘무당’ 등의 프레임을 씌웠다. “최순실이 믿고 있다는 종교가 우리나라 관료 사회까지 지배하는 사실 끔찍하시지 않으냐”(이재정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 “미르-K스포츠재단도 축약하면 ‘미륵’이다. 미륵은 최순실 씨의 선친 최태민 목사”(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등의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무속인(shaman)이 한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한 대행 부인이 무속전문가라고 뜬금없이 발언한 것은 확인할 수 없는 무책임한 폭로”라며 “예전부터 본인들의 관종놀이에 필요하면 악용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무속 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다. 지난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22년 2월 민주당 선대위 ‘더밝은미래위원회’ 상임위원장 이었던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한 ‘저주 의식’을 공개했다. 그는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벽에 걸어놓고 이를 훼손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4장을 공개하며 “이제부터 오살(五殺) 의식을 시작하겠노라. 윤 쩍벌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썼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해당 인사를 해촉하며 논란 확산을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