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최근 계엄·탄핵정국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불황에 고환율 악재까지 겹친 정유업계는 체질 개선을 위해 사업 다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원유를 달러로 사들이는 정유사들은 환차손 위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간 10억 배럴 이상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업계는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환차손이 연간 1000억원 증가한다고 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원유를 대량으로 미리 사두고 몇 달 후 달러로 결제하는데, 환율이 급등하면서 영업에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올 3분기 합산 영업 손실이 1조4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이 하락한 탓이다. 정제 마진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 원료비를 뺀 값을 말한다.
업계는 올 4분기에는 정제 마진 안정화를 기대했으나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올 3분기 배럴당 3.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11월 6달러, 이달 셋째 주 5.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6일에는 4.65달러까지 내려와 손익분기점인 4.5달러에 근접했다. 내년에도 원유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실적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석유화학 진출, 선택 아닌 필수”
에쓰오일은 9조2580억원을 들여 울산에 대규모 석유화학 제품 생산 시설을 짓는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설이 2026년 완공되면 연간 에틸렌 180만톤(t)을 생산할 수 있고, 이를 원료로 석유화학 제품 320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 GS칼텍스 역시 2조7000억원을 들여 여수에 MFC(올레핀 생산 시설)를 만들어 연간 에틸렌 75만t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GS칼텍스는 MFC 공정이 정유와 석유화학 공정을 연계해 제품 수율을 최적화한 ‘COTC’(Crude Oil to Chemical) 사례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정제 사업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친환경 연료로 미래 먹거리 확보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SAF를 일본에 수출한 데 이어 최근 초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대만 선사 양밍에 수출했다. 기존 선박유에 바이오디젤을 혼합한 바이오선박유 역시 국제해사기구(IMO)의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에 따라 친환경 연료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지난 9월 SAF 전용 생산라인을 갖추고 본격적인 상업 생산에 돌입했다.
박기태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탄소 중립 시대에 정유사들은 친환경 연료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게 시급하다”라며 “화석연료를 지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이 탄소 중립 시기를 늦출 수는 있으나, 큰 방향성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