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美 가장 반동국가"…트럼프 대응팀에 '돌격대장' 박태성

노동신문은 올해 성과를 총화하고 내년 계획을 수립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제11차 전원회의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고 보도했다. 뉴스1

노동신문은 올해 성과를 총화하고 내년 계획을 수립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제11차 전원회의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고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열린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향한 '최강경 대응 전략'을 천명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쉽게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사전 경고 성격의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언급 없는 대미 강경노선

노동신문은 29일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8기 11차)가 김정은 주관으로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평양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미국은 반공을 변함없는 국시로 삼고 있는 가장 반동적인 국가적 실체"라며 "대한민국은 미국의 철저한 '반공 전초기지로' 전락됐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익과 안전보장을 위하여 강력히 실시해 나갈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23~27일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자들이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 입장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23~27일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자들이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 입장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그러면서도 '최강경 전략'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도 않았다. 

군사 분야에선 "군대를 당의 영도에 무한히 충실한 혁명적 당군으로, 사상과 기술강군으로 철저히 준비시킬 것"을 강조했다. 핵을 동원해 남조선을 평정하겠다고 밝힌 지난해와 달리 '핵능력 고도화'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정보화, 현대화 실현에 계속 박차를 가하며 과학적인 훈련형식과 방법을 부단히 연구·적용하라"며 다소 수위를 조절했다.

트럼프 2기에서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김정은의 이번 대미 메시지에는 트럼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협상 국면이 열려도 쉽게 양보하지 않겠다는 복잡한 속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올해 이례적으로 전원회의 개최 사실을 곧바로 알리지 않았고, 종료 뒤에도 결과 공개에 이틀이나 걸렸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최 시기·발표형식 등에 있어 통상적인 관례를 벗어났다"며 "김정은 정권 들어 당 전원회의 첫날 개최 여부를 미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신 김정은은 말보다는 행동에 방점을 찍는 듯한 모양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러 업무를 맡는 최측근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러시아와의 밀착을 대미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사실상의 '트럼프 대응팀'으로 볼 여지가 있다. 

우선 대미사령탑인 최선희 외무상과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보선했다. 최선희는 북·러 관계 격상 작업을 진두지휘한 공로와 함께 향후 대미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영길은 러시아 파병 이행과 관련한 인사로 풀이된다.

2018년 10월 21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상원 청사에서 만나 악수하는 박태성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왼쪽)과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 의장. 연합뉴스

2018년 10월 21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상원 청사에서 만나 악수하는 박태성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왼쪽)과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 의장. 연합뉴스

내각총리에 '삼지연 멤버' 박태성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내각 총리의 교체도 눈에 띈다. 실세 총리로 불렸던 김덕훈의 뒤를 이은 박태성(69)은 김정은의 대표적인 측근으로 분류된다. 김정은 집권 초기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자격으로 김정은을 근접 수행한 그는 상대방과 타협보다는 대결을 선호하는 저돌적인 성격으로, 궂은 일을 도맡아 행하는 '돌격대장'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른바 '삼지연 8인방'의 한 명으로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성은 또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에 배석했고, 당 과학교육비서 겸 국가우주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북·러 군사기술 교류도 주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러시아와의 다방면의 협력(경제, 자원, 우주 및 군수)을 촉진하기 위해 전면에 배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내각 부총리에는 '건설통'인 국방성 김정관 제1부상이 임명됐다. 2013년 마원춘 당시 국방위원회 설계국장과 김정은을 수행하면서 대내외에 이름을 알린 그는 김정은의 관심 사업인 원산·갈마 지구와 온천 관광지 건설을 지휘한 공로로 2019년 말 군의 행정을 총괄하는 인민무력상에 임명되기도 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 총책인 김정식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새로 합류했다. 국방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내년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 달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인선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방러도 수행했는데, 북한 미사일 대러 수출에도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박태성을 내각총리에 새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오른쪽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된 최선희 외무상. 뉴스1

노동신문은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박태성을 내각총리에 새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오른쪽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된 최선희 외무상. 뉴스1

러시아 파병엔 또 침묵

이런 움직임은 앞서 김정은이 지난달 21일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 2024' 개막식 연설에서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다"며 "그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 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 정책이었다"고 언급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이 트럼프와의 대좌를 서두르지 않고 러시아와 더 밀착해 몸값 높이기를 노리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은 파병 등에는 여전히 침묵했다. 북한군 사상자 발생 등으로 인한 내부 동요 가능성을 의식한다는 방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내 체제 결속에 집중하면서 대외 메시지는 최소화하는 모습"이라며 "현재 불확실한 대내외 정세를 관망하되, 향후 정세변화에 따라 입장을 구체화·가시화하겠다는 의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